“급식용 과일 창고서 썩어가”… 친환경 농가 개학 연기에 직격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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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지역경제]<5> 기로에 선 친환경 농가들

코로나19로 인해 개학이 연기되면서 급식 납품용 친환경 농산물을 키우는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달 22일 충남 아산시 한길농원의 냉장창고에는 납품하지 못한 배 상자가 가득 쌓여 있었다(위 사진). 지난달 26일 경기 고양시에선 농민 염현수 씨가 본인이 직접 폐기 처분한 근대와 청상추 더미를 보며 안타까워했다. 아산=홍진환 jean@donga.com / 고양=송은석 기자
코로나19로 인해 개학이 연기되면서 급식 납품용 친환경 농산물을 키우는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달 22일 충남 아산시 한길농원의 냉장창고에는 납품하지 못한 배 상자가 가득 쌓여 있었다(위 사진). 지난달 26일 경기 고양시에선 농민 염현수 씨가 본인이 직접 폐기 처분한 근대와 청상추 더미를 보며 안타까워했다. 아산=홍진환 jean@donga.com / 고양=송은석 기자
지난달 22일 충남 아산시 둔포면 한길농원의 냉장창고에는 배가 가득 담긴 플라스틱 상자 2000여 개(약 40t)가 쌓여 있었다. 배 상자를 살펴보던 농원 대표 강정우 씨(52)는 “벌써 절반 이상이 상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창고에 쌓여 있는 배의 절반가량은 올 3월부터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급식용으로 납품할 예정이었다.

강 씨는 약 3만3000m² 규모 과수원에서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는 유기농 농법으로 배를 키우고 있다. 매년 가을에 수확한 친환경 배의 30∼50%를 그해 가을과 이듬해 봄 서울 학교에 납품해 왔다. 그런데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등교 개학이 연기된 탓에 정성껏 키운 배를 대거 폐기 처분해야 할 처지가 됐다.
○ 학교 급식 비중 큰 친환경 농산물 피해 집중

코로나19로 인한 소비 감소, 외국인 일손 부족 등으로 지역 농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학생들의 등교 연기로 판로 자체가 막혀버린 친환경 농가의 피해가 더 크다. 친환경 농산물은 품질이 더 좋지만 모양이 예쁘지 않아 시중의 일반 농산물과 비교할 때 경쟁력이 떨어진다. 이에 대부분 학교 급식 납품을 위한 계약재배가 이뤄진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1조3000억 원 규모(2018년 기준)의 친환경 농산물 시장 가운데 39%가 학교 급식용이다.

강 씨 농가의 경우, 지난가을 수확한 배로 지금까지 거둬들인 수익은 평소의 70%에 불과하다. 여태 입은 손실도 막대하지만 학교 수업 정상화가 단계적으로 천천히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타격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최근 학생과 교사 중에 확진자가 계속 나오면서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강 씨는 “전반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아 학교 말고 다른 데 납품하기도 쉽지 않다”며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농사짓는 걸 보며 자랐지만 경기가 이렇게 얼어붙은 건 처음”이라고 했다.

과수원 나무에 앵두만 한 크기의 초록색 배가 주렁주렁 달린 것을 볼 때면 강 씨의 속은 타들어간다.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가을 첫 수확부터 판매가 가능할지 예측이 불가능해서다. 그는 “앞으로 6개월 뒤를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면서 “그렇다고 올해 농사를 포기하고 있을 수도 없지 않으냐”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 개학 기다리며 밭 갈아엎기 수차례
지난달 26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내유동의 한 비닐하우스 앞에는 시든 근대와 청상추 더미가 쌓여 있었다. 염현수 씨(63)가 며칠 전 하우스에서 뽑아서 버린 채소다. 친환경 채소류를 키우는 그는 생산량을 대부분 경기 지역 학교 급식용으로 납품한다. 수확을 못 해 채소가 너무 커져 상품 가치가 떨어지자 결국 뽑아버리고 새로 심은 것이다. 염 씨는 “빨리 자라는 시금치와 얼갈이는 3월 이후 이렇게 뽑아내고 다시 심기를 벌써 수차례 반복했다”며 “이미 갈아엎은 씨앗과 거름값이 다 빚인데 언제 학교가 정상화될지 알 수가 없다”고 답답해했다.

경기 지역의 다른 친환경 급식 납품 농가 1200곳도 염 씨와 비슷한 처지다. 경기도친환경농업인연합회에 따르면 경기 지역 농가들이 3∼5월 학교 납품을 하지 못해 본 피해액만 약 71억 원에 이른다.

그나마 최근에는 전남, 충남, 경북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 교육청과 손잡고 가정으로 친환경 농산물 등을 보내주는 ‘급식 꾸러미’ 사업을 진행하면서 농가들의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단발성 지원이라 한계가 있다. 경기도교육청 등 일부 지역에선 농산물 외에 육류나 가공식품까지 꾸러미 대상으로 포함하면서 오히려 계약 재배 농가들이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 외국인 입국 막혀 ‘일손 부족’ 이중고

코로나19로 농촌 인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입국하지 못해 일손이 부족한 것도 농가의 걱정거리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외국인 계절 근로자(C-4, E-8 비자) 3052명이 입국할 예정이었지만 5월 말인 지금까지 한 명도 들어오지 못했다. 5월 초부터 6월 말까지 가장 바쁜 봄 농번기에도 일할 사람을 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올 6월 말까지 외국인 근로자들이 입국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염 씨도 원래 이맘때는 외국인 근로자 3명과 함께 일했는데 2명이 코로나19로 입국을 하지 못해 현재 염 씨 부부와 외국인 근로자 1명만 농사일을 하고 있다. 염 씨는 “학교 급식이 정상화돼 일거리가 많아진다 해도 일손이 부족해 또 걱정”이라고 했다. 각 지자체와 농협, 민간기관에서 일손을 돕겠다며 자원봉사에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이에 농식품부는 지난달 25일부터 도시 구직자를 농촌에 소개하는 ‘도농 인력중개 시스템’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기존에는 전국 농촌인력중개센터에서 지역 구직자를 모집해왔다. 도시 근로자가 농촌 일손을 돕기 위해 지원하면 교통비와 숙박비 등을 지원해준다.

아산=남건우 woo@donga.com / 고양=주애진 기자
#친환경 농가#코로나19#농산물 피해#외국인 일손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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