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자본의 도 넘은 기업 흔들기… 현대차 “미래 투자 발목 잡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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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현대차 순익 3.5배 배당 요구


미국 행동주의 펀드인 엘리엇은 현대자동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던 지난해 4월 이후 주가 하락으로 3400억 원의 투자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엘리엇이 이 때문에 현대차그룹에 무리한 요구를 되풀이하며 손실을 메우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26일 IB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당기 순이익의 3.5배가 넘는 배당을 해달라는 엘리엇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엘리엇은 2000억 원을 배당금으로 받아 손실의 상당 부분을 만회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 “기업의 미래를 희생해 배당을 하라니”

엘리엇이 요구한 배당금은 현대차는 주당 2만1967원, 현대모비스는 주당 2만6399원이다. 사측은 주당 배당금을 4000원(현대차는 중간배당 포함)으로 책정했다. 증권가는 양사가 이사회에서 결정한 배당금도 적은 수준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현대차는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63.8% 감소했지만 배당금을 전년 수준으로 유지했다. 모비스는 전년 대비 500원 늘리기까지 했다. 모비스는 더 나아가 앞으로 3년간 2조6000억 원 규모의 주주환원 정책도 펼칠 계획이다.

현대차와 모비스 이사회는 “엘리엇의 주장대로 배당하면 회사의 미래에 대한 투자 재원을 모두 배당에 쏟아 붓게 돼 기업의 지속 성장을 장담할 수 없다”고 반대했다. 엘리엇의 사외이사와 감사위원 선임 제안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기업의 사외이사나 감사위원은 영업비밀을 포함해 미래계획, 재무상태 등 모든 활동을 검토할 수 있다. 엘리엇이 사외이사로 추천한 인사는 중국계 전기차 기업 카르마오토모티브 등에서 근무하고 있어 친환경 자동차 분야에서 현대차의 기밀이 유출될 우려도 있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엘리엇 같은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는 결국 투자 차익만 거두면 떠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사회에 참여하는 것이 회사의 지속 성장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 캐스팅보트 쥐게 된 국민연금

양사의 이사회가 엘리엇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다음 달 22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이 불가피해졌다. 현대차의 외국인 주주 비중은 44.85%, 현대모비스는 46.78%에 이른다. 양사에 약 3%의 지분만 가진 엘리엇이 거액 배당으로 설득할 경우 동조할 외국인도 있을 수 있다. 이에 따라 현대차(8.70%)와 현대모비스(9.45%)의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또다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해는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안을 냈지만 국민연금에 투자의결권을 컨설팅하는 자문사들이 반대 의견을 내면서 지배구조 개편안은 무산됐다.

다만 이번 주총에서는 국민연금이 현대차그룹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재계의 전망이다.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의결권 행사 세부기준’에 따르면 배당금 지급 수준이 회사의 이익규모, 재무상황 등을 고려해 주주가치를 훼손할 정도로 과소 또는 과다한 경우 반대표를 행사하도록 돼 있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소수 지분을 투자해놓고 기업에 중요한 의사 결정을 내리거나 투자이익을 취하려는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이 앞으로 더욱 강해질 수 있다”며 “한국 기업이 투기 자본의 경영 간섭에 맞서려면 차등의결권 같은 경영권 방어수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민구 warum@donga.com·김현수 기자
#투기자본#현대차#엘리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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