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이후에는 거래시장이 움직이기는 한다. 하지만 올해는 공시가격 상승, 대출 규제 등의 영향으로 위축된 매수심리가 활발히 움직일지는 의구심이 든다”(함영진 직방 빅데이터 랩장)
“이미 이사철이 시작됐지만 전세가격이 하락하는 등 실수요도 위축됐다. 대출규제가 있는 한 주택시장 약보합세는 불가피하다. 분양시장도 미분양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
매해 설 연휴 이후 주택시장은 그 해 상반기 부동산 시장의 바로미터다.
명절을 앞두고 연초 이후 미뤄뒀던 주택 매입 등 자금 집행이 본격적으로 재개되고 결혼이나 이사 등 대소사를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결정하는 풍습 탓이다. 최근 연말연초 부동산시장이 처한 급격한 ‘매수실종’ 사태의 원인중 하나도 이 같은 명절 전 수요 둔화와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설 명절이 끝나는 시점에 주택 거래가 활발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하지만 올해 만큼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이미 이사철이 시작됐지만 전셋값이 급락하는 등 전조가 심상찮다. 2월 이후부터 봄철까지 이어질 ‘이사 성수철’이 집값에 미치는 영향이 예년보다 적을 수도 있다는 전망에도 무게가 실린다.
◇봄 이사철 실수요 되살아나겠지만…“집값 영향 주기 어려워”
부동산 전문가들은 올해 1월 부동산 시장이 처한 ‘매수실종’ 사태는 설 연휴가 끝나면서 다소 해소될 것으로 점쳤다.
6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신고일 기준(거래일로부터 60일 이내) 서울 아파트 1월 거래량은 1877건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심각한 거래 침체기였던 2013년 1월 1196건 이후 최근 6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10월보다 3억~4억원 떨어진 급매물이 나와도 매수세가 붙지 않는 심각한 매수 실종 상황이다.
하지만 2월부터는 한해 이사 수요가 가장 집중되는 이사 성수기가 찾아와 거래시장도 회복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신학기를 앞둔 학군 수요 이사가 막바지에 이르고 4~5월 봄 결혼 시즌을 앞둔 신혼부부 등 새집 장만 수요가 겹치기 때문이다.
다만 전년과 비교하면 매수세가 붙지 않는 가운데 ‘거래절벽’ 수준의 거래시장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함영진 직방 랩장은 “지난해 12월 전국 주택거래량은 5만5000여건으로 계절적 요인 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매수심리 위축이 심각하다”면서 “3월 7~8만건 정도까지 늘어나지 않을 경우 매수심리를 움직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일 부동산인포 팀장은 “현재 급매물조차 거래되지 않을 정도로 현금부자마저 관망세”라며 “실수요자 역시 대출규제가 옥죄고 있는 상황이다보니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도 “대출규제가 강력해 실수요자들도 매수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라며 거래 침체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양지영 양지영R&C연구소장도 “명절 이후 본격적으로 자금 집행을 추진하는 경향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이미 4억원가량 떨어진 강남 재건축 아파트 등은 가격에 매력이 생겨 거래량이 반짝 증가할 수 있다”면서도 “거래 정상화라기 보다는 저가 매물 해소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다주택자 고심중…올해도 증여 활발할 듯
올해 주택시장 향방의 키를 쥔 다주택자들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예측이 엇갈린다.
올해 주택 보유 부담은 공시가격 큰폭 인상에 따른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인상과 각종 소득세 감면 축소 등의 영향으로 크게 늘어난다. 또 9·13대책 이후 신규 임대사업자 세제 감면 혜택 축소, 대출규제와 집값 하락기에 갭투자(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투자) 위축 등의 영향으로 가수요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급격하게 감소할 전망이다.
다만 여전히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가 부동산시장을 억누르고 있어 다주택자들이 매각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권 교수는 “시장이 매수자 우위시장에 들어가면서 다주택자들도 손해를 보면서 팔 바에는 매물을 안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함 랩장은 “갈수록 과세 부담이 커지고 있어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의 주택 증여건수를 기록한데 이어 올해도 증여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더 오르기 어렵다고 판단한, 실익이 없는 주택만 매매시장에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양 소장은 “보유세 부담이 상당히 크고 올해 금리 인상에 따른 대출 부담도 늘어나고 있어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며 “오는 4월 공시가격 발표부터 연말 종합부동산세 고지까지 다주택자들의 매물이 증가하고 가격 조정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권 팀장도 “4월 공시가격 발표 이후 5월부터 매물이 급격하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강남3구 주도, 하락세 확산될듯…강북도 위태위태
서울 주택시장의 경우 설 이후 서울 동남권, 이른바 강남4구(강남, 서초, 송파, 강동)이 주도하고 있는 집값 하락세가 강북지역으로 확산될지가 변수다.
서울 강남 11개 자치구 아파트값은 전년말 대비 올해 1월28일 현재 0.56% 하락해 같은 기간 강북 14개 자치구 (-0.28%)보다 하락률이 2배 가파르다. 특히 최근 한달간 강남구(-1.30%)를 비롯해 강동구(-0.72%) 등 강남4구는 평균 0.86% 하락한 반면 강북(-0.07%), 중랑(-0.10%), 종로(0.10%) 등 일부 지역은 상대적으로 하방 경직성이 큰 편이다.
전문가들은 다만 강북도 버티지 못하고 강남권 주택시장을 쫓아 후행할 것이라는 예측을 많이 내놨다.
함 랩장은 “서울권 주택시장이 지역별로 탈동조화 됐다고 해도 여전히 연동이 될 수밖에 없어 강남이 조정받기 시작했는데 강북만 오를 수 없다”면서 “만약 3월에 거래량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강북도 급격한 하락이 함께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양 소장은 “강북도 여전히 부담스러운 가격이라는 점에서 실수요자들도 부담스러운 시장이 됐다”면서 “강북도 조만간 강남을 쫓아 가격 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도 “강남은 많이 올랐기 때문에 낙폭도 크지만 강북도 많이 올랐다”면서 “강북도 점차 가격이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권 팀장은 “매수자들이 혹할만한 급매물이 없어 거래가 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강남북이 하락폭의 차이가 있을 뿐 전반적으로 약세로 봐야 한다”면서도 “서울은 개발호재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이 많기 때문에 지자체가 어떤 개발 계획을 가지고 있느냐가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전문가들은 올해 주택시장이 침체로 접어들면서 분양시장을 비롯해 토지, 경매 등 다양한 대체 투자수요가 나타날 가능성을 제기했다.
양 소장은 “상가주택이나 그린벨트 해제 주변 토지 등이 투자 수요를 대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함 랩장은 “올해 22조원 이상의 토지보상금이 예정돼 있고 예타 면제, 3기 신도시 개발 등 호재가 있어 토지 가격이 올해 부동산시장의 복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전통적으로 거래시장이 좋지 않을때는 경매의 매력이 높아진다”면서 “분양시장도 실수요자들에게 괜찮은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권 팀장은 “올해도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높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분양쪽에서 집중해 투자 기회를 보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기존 주택시장도 급매물이라고 하면 타이밍보다는 가격 수준에 따라 매수에 나서는게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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