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금융사, 항공·에너지 투자까지 휩쓰는데…눈앞만 보는 우물안 韓금융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1일 20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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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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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까지 글로벌 전력 생산의 절반은 신재생 에너지가 담당할 것이다. 이 분야 투자에서 글로벌 선두주자가 되겠다.”

세계 최대 인프라투자 운용사인 호주 맥쿼리그룹은 지난해 영국의 ‘친환경투자은행(GIB)’을 23억 파운드(약 3조3600억 원)에 인수했다. 이를 ‘친환경투자그룹(GIG)’으로 개편해 올해 5월 서울에서 발족식을 열었다. 아시아 신재생 에너지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하는 노력에 힘입어 맥쿼리의 지난해 순이익은 약 25억5700만 호주달러(약 2조 원)로, 전년 대비 15% 증가했다.

●항공 인프라 에너지…대체투자 노리는 글로벌 금융

글로벌 금융사들은 기존의 안정적인 수익원에 안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투자처를 발굴하고 있다. 주식과 채권 등 전통적인 자산의 투자 수익률이 하락하면서 부동산, 사회간접자본(SOC) 등 대체투자에 눈길을 돌리며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회계컨설팅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 따르면 작년 말 현재 글로벌 대체투자 운용자산은 약 10조9000억 달러(1경2317조 원)에 이른다. 대체투자의 영역도 항공기, 선박, 에너지, 환경, 산림 등 전방위로 확대되는 추세다.

해외 금융회사들은 유망사업으로 꼽히는 항공기 금융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보잉에 따르면 항공기 리스, 항공기 구입자금 대출 등 항공기 금융 수요는 2020년 1720억 달러(약 200조 원), 세계 항공기 교체 수요는 2035년까지 5조9300억 달러(약 67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씨티그룹, 영국 스탠다드차다드 등 미국과 유럽의 은행들은 수백 대의 항공기를 운용하는 항공기 리스회사를 자회사로 두거나 주요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일본이 가세해 세계 시장의 40%를 잠식했다. 일본 미쓰이스미토모은행(SMBC)은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의 항공기 리스부문을 인수해 업계 3위의 회사로 성장시켰다. 중국은행, 중국공상은행, 중국개발은행 등도 항공기리스 회사를 자회사로 두고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연간 1조 달러(약 1130조 원)의 민간자본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되는 세계 인프라 시장에서도 금융사, 연기금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10년간 1조5000억 달러(약 1700조 원)에 이르는 미국 정부의 인프라 투자계획, 유럽연합의 5000억 유로(약 650조 원) 규모 ‘융커플랜’,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등 세계 각국에서 인프라 개발 계획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 자산운용사 브룩필드는 다양한 인프라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거두는 대표적 사례다. 남미와 호주의 철도 1만km, 아메리카 대륙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1만7000km 등을 보유하고 있다. 개발에 참여했거나 투자한 발전설비는 전 세계 840곳에 이른다. 올해 6월에는 빅데이터 산업 투자를 위해 통신기업 AT&T의 데이터센터 31곳을 11억 달러(약 1조2000억 원)에 사들였다.

●인력 역량 부족…존재감 없는 한국 금융


국내 금융회사들도 4, 5년 전부터 부동산 등 해외 대체투자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2000년대 초부터 해외 시장에 도전한 미래에셋그룹은 현지 법인을 중심으로 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들어 미국 코스모폴리탄 호텔, 영국 캐논브릿지 등 해외 부동산과 인프라에 약 1조 원을 투자했다.

최근 하나금융투자는 3000억 원대의 베트남 태양광 발전의 시행사로 나서 금융 자문 및 주선을 담당해 사업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진형주 하나금융투자 대체투자금융실장은 “예전엔 국내에서 의사결정이 늦어져 입찰 경쟁에 참여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자산 평가 능력이나 자본 규모가 커지면서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글로벌 대체투자 시장에서 한국 금융사들의 영향력은 여전히 미미하다는 것이 시장의 대체적인 평가다. 대부분의 자산이 비교적 분석이 쉬운 빌딩 등 부동산 투자에 집중되고 있다. 사업을 직접 발굴, 기획하기보다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에 간접적으로 지분 투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내 은행과 증권사에서 해외 인프라 투자를 담당하는 인력은 대체로 10명 미만 수준이어서 자산의 미래 가치를 분석할 역량도 떨어진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누구나 탐낼 만한 핵심 자산을 비싼 값을 주고 사는 위험 회피 성향의 투자가 많다”며 “투자은행(IB)를 표방한 대형 증권사들도 리스크 관리 등 자산에 대한 입체적인 분석 능력은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선진국 시장에서 글로벌 톱 금융사와 경쟁하기보단 건설 등 경쟁력을 갖춘 산업 분야와 힘을 합쳐 신흥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지역을 특화해 신흥 시장에서 성공 모델을 만든 뒤 다른 지역으로 확대해 가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2, 3년마다 순환보직…대체투자 전문가 ‘하늘에 별 따기’▼

대체투자 시장이 급팽창하면서 최근 서울 여의도 증권가는 대체투자 구인난을 겪는 금융회사가 적지 않다. 주식이나 채권 등 전통 자산에 비해 뒤늦게 성장한 분야인 탓에 전문 인력이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자산운용사의 일반 팀장급 연봉은 평균 1억 원을 조금 웃돈다. 하지만 대체투자에 특화된 전문 인력은 정해진 연봉이 따로 없을 정도로 몸값이 비싸다. 특히 투자할 자산 개발부터 계약, 관련 펀드 설정까지 대체투자의 모든 과정을 경험해 본 전문가를 국내에서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이 때문에 성사시킨 사업 규모에 따라 인센티브를 구체적으로 보장해주면서 가까스로 전문가를 영입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금융회사들끼리 대체투자 인력을 빼오려는 ‘인력 쟁탈전’도 치열하다. 같이 호흡을 맞춘 팀 전체가 한꺼번에 움직이는 사례가 많아 쟁탈전에서 밀리면 자칫 조직이 흔들릴 수도 있다. 금융사들이 부동산, 에너지 등 다른 업종에서 현장 경험을 쌓은 인력을 급하게 끌어오면서 몸값에 거품이 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본부장이나 팀장의 주요 역할이 인력 유출 방지와 외부 스카우트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고 전했다.

연기금들도 인력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8월 현재 대체투자 규모가 110조 원에 이르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올해 퇴직한 17명 중 8명이 대체투자 전문 운용역이었다. 상대적으로 해외 투자 경험이 풍부한 국민연금, 한국투자공사 출신들은 민간 금융사의 스카우트 타깃이 된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대체투자 전문 인력을 적극 양성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증권사 임원은 “2, 3년의 순환보직 시스템에서는 해외 네트워킹이나 투자 노하우를 축적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해외 대체투자 확대를 위해서는 현지 전문가를 적극 활용하는 주문도 나온다. 이형기 금융투자협회 연구원은 “해외 진출에 어려움을 겪던 일본 노무라증권은 2008년 금융위기 후 리먼 브라더스를 인수해 노하우를 전수받으면서 투자 역량이 크게 향상됐다”며 “현지 고급 인력을 적극적으로 영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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