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 재무제표에 반영해 인정해줘야”

  • 동아일보

[기업들 ‘사회적 책임 활동’ 고심]계량화 제안 정도진 중앙대 교수



국내 대기업 인사팀 고위 임원 A 씨는 매년 채용 시즌이면 장애인 등 취업 취약계층 일자리 확대를 두고 머리를 싸맨다. 사회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기업 입장에선 쉽지만은 않다. A 씨는 “취약계층을 특별히 채용했다면 기업 입장에선 비용으로 볼 수도 있는데, 그에 따른 사회적 가치 창출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A 씨의 고민은 사실 재계 공통이다. 다른 대기업 임원 B 씨는 “회사 차원에서 그동안 공유가치창출(CSV), 사회공헌활동(CSR) 등에 굉장히 큰 비용을 써왔지만 성과를 재무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니 보람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기대가 부쩍 높아지면서 기업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정확한 측정과 평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를 통해 기업의 지속적인 사회적 가치 창출 활동을 지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도 걸음마 단계인 관련 연구 작업을 국내에서는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사진)가 주도하고 있다. 정 교수는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국가회계재정통계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회계 전문가다.

○ 사회성과 측정해야 관리도 가능

정 교수는 2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직까지 기업의 사회적 가치(사회성과) 창출이 사회공헌활동과 뒤섞여 객관적으로 측정되지 못하고 있다”며 “기업의 사회적 가치도 회계기준에 따라 평가해 재무제표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측정할 수 없다면 관리할 수 없다’고 말했듯 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측정·평가할 수 없다면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며 기업의 사회성과에 대한 계량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기업들의 연간 사회적 성과를 화폐 단위로 측정한 뒤 재무제표를 통해 공시해 투자자, 주주 등 이해관계자들이 해당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평가할 때 참조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주요 기업들은 CSR 활동에 따른 비용은 재무제표에 ‘비용’ 항목으로 분류해 처리하고 있다.

정 교수는 “현행 회계처리 기준에 따라 사회성과도 ‘사회성과자산’ ‘사회성과부채’ ‘사회성과수익’ ‘사회성과비용’으로 나눠 측정하고 표시해야 한다”며 “사회성과가 재무제표에 포함되더라도 총자산과 총부채, 영업이익, 당기순손익에는 변동이 없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똑같이 500억 원의 연 매출을 올리는 C기업과 D기업이 있다고 해보자. C는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회사이고 D는 전기시설이 없는 오지에 재충전이 가능한 ‘나이트 라이트’를 판매하는 회사다. 현행 기준으로는 두 회사 모두 연간 500억 원의 매출만 공시하면 된다. 하지만 만약 사회성과를 재무제표에 표시하게 된다면 D기업은 사회성과 매출을 별도로 표시할 수 있다. 정 교수는 “투자자 입장에서도 기업의 지속 가능성과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 사회성과는 기업 본업의 연장선

사회성과는 일반적인 사회공헌활동과 달리 기업 본업과 연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정 교수가 정의하는 기업의 사회성과란 기업이 ①주된 경영활동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②직접적이고 의도적으로 창출한 ③공익적 결과를 말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비영리조직을 후원하거나 단순히 기부하는 일반적인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은 사회성과로 분류될 수 없다. 주된 경영활동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기존 사회공헌활동 및 기부 활동은 현재도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발간하는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에 별도로 작성하게 하는 등 ‘투 트랙’으로 다루면 된다.

정 교수는 기업이 임의로 사회적 성과를 정해선 안 되며 반드시 주주들의 동의를 얻어 정관에 명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본업과 관계없는 사회적 성과를 추구한다면, 주주들의 동의를 받을 수 없고 지속 가능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기업이 임직원에게 지급하는 임금 역시 사회성과로 분류할 수 없다. 공익적 결과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이 취약계층을 배려해 채용하는 행위는 사회성과에 해당한다. 직접적이고 의도적으로 고용 효과를 창출했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재무제표상 사회적 비용을 많이 쓴 회사에 정부가 세제 혜택을 지원하면 큰 동기 부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저소득층을 위해서 특별히 인력 채용을 했다면 관련 비용은 사회적 비용으로 별도 분류해 사회적 조세 감면 등 세제 혜택의 근거로 쓸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회성과의 측정과 표시는 세계적으로도 아직 시도된 바가 없다. 정 교수는 “국내 회계기준원과 먼저 협의한 뒤 영국 국제회계기준위원회에도 보고해 회계기준 제정을 논의하려 한다”며 “사회적 기업에 대한 평가와 측정을 한국이 주도할 수 있기 바란다”고 했다.

한국회계학회는 7, 8월 중 사회성과를 측정하고 표시하는 방안과 관련한 포럼을 공기업 및 일반 기업, 사회적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기업#사회적가치#정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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