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대화는 경제위기 이겨낼 열쇠… 노사정 합의가 목적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8일 03시 00분


8년 만에 재개된 ‘사회적 대화’의 의미
노동계-경영계-정부 등 경제주체, 쟁점 논의하며 합의 도출하는 과정

문성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장,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김주영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왼쪽부터)이 1월 31일 서울 종로구 노사정위에서 열린 6자 대표자 회의에 참석해 손을 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문성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장,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김주영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왼쪽부터)이 1월 31일 서울 종로구 노사정위에서 열린 6자 대표자 회의에 참석해 손을 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지난달 31일 노사정(勞使政) 6자 대표자 회의가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열렸다. 양대 노총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위원장에 경제 2단체장(한국경영자총협회장,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노사정위원장, 고용노동부 장관이 모두 참여한 6자 회의는 2009년 11월 이후 8년 2개월 만이다.

6자 회의는 앞으로 대화기구 재편과 대화 의제 등을 논의한 뒤 노사정위원회를 대체하는 사회적 대화기구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오랜 시간 단절된 ‘사회적 대화’가 재개된 만큼 사회적 대화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며 왜 해야 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 위기 극복 매개체

사회적 대화란 경제주체들이 한데 모여 경제, 사회, 복지 등 다양한 쟁점을 논의한 뒤 포괄적인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을 뜻한다. 경제학에서 경제주체는 노동과 자본, 정부다. 그래서 사회적 대화는 노사정 대화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노사정은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를 축약한 말이다.

사회적 대화는 사회적 대타협(노사정 대타협)을 목적으로 한다. 대타협이란 각 경제주체(노사정)가 서로 양보해서 특정 정책과 노선에 대해 큰 틀의 합의를 보는 것을 뜻한다. 사회적 대화와 사회적 대타협이 주로 ‘위기 국면’에서 시작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경제 불황기에 물가 상승)이 장기화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성장률이 정체되고 실업률은 치솟았다. 이때 영국과 미국은 각각 대처리즘(대처 전 영국 총리의 개혁)과 레이거노믹스(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경제정책) 같은 정부 주도 개혁으로 위기를 타개했다. 반면 유럽 국가들은 주로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의 경우 정부 주도의 과감한 개혁으로 단시간에 위기를 극복했다. 그러나 복지 축소와 양극화 같은 부작용도 생겼다. 사회적 대타협은 노사정 간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 주도 개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다만 각 경제주체의 피해와 양극화를 최소화하면서 지속 가능한 ‘구조 개혁’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대타협으로 위기 극복한 네덜란드

사회적 대타협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네덜란드 노사정 대표가 1982년 체결한 ‘바세나르 협약’이다. 당시 네덜란드는 소위 ‘네덜란드병’(자원에 의존해 급성장한 국가가 산업 경쟁력을 등한시하면서 경제가 위기에 빠지는 현상)에 시달리는 유럽의 ‘불량 국가’였다. 과도한 복지 지출로 재정 적자가 심각했고, 청년 실업률은 30% 가까이 치솟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노동계는 연간 5∼15%의 임금 인상을 요구했고, 기업들은 신규 채용을 기피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지금의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었던 셈이다.

1982년 집권한 뤼돌퓌스 뤼버르스 총리는 사회적 대타협으로 위기를 극복하려고 했다. 노동계는 임금 동결, 경영계는 근로시간 단축을 받아들이는 대신 정부는 사회보장제도를 개혁하고 재정과 세제 지원으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제주체의 양보를 통한 체질 개선과 함께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고용 창출을 시도한 것이다.

네덜란드의 노사정 대표들은 오랜 협상 끝에 이런 내용이 담긴 78개의 협약을 바세나르시에서 1982년 11월 24일 체결했다. 정식 명칭은 ‘고용 정책에 관한 일반 권고’로 지금까지 네덜란드의 경제 정책 기조를 결정하는 역사적 협약으로 평가받는다.

이 협약의 효과는 막강했다. 협약 체결 당시 50%대였던 네덜란드의 고용률은 현재 76%(지난해 3분기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5위다. 청년 실업률은 7.8%(지난해 11월 기준)까지 떨어졌고, 1인당 국민소득은 4만8272달러로 세계 12위다. 유럽의 불량 국가가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유럽의 ‘강소국’으로 거듭난 셈이다. 독일,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도 사회적 대타협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 한국도 네덜란드처럼?

한국도 1997년 말 외환위기가 터지자 대타협을 시도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는 대통령 자문기구로 노사정위원회를 설치하고 같은 해 2월 정리해고 법제화 등을 담은 역사적인 대타협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협약은 부결됐고, 이후 노사정위를 탈퇴한 민노총은 지금까지 복귀하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바세나르 협약을 모델로 한 노동개혁을 추진했다. 2015년 9월 15일 노사정 대표가 합의문에 서명했지만, 이후 정부의 이른바 ‘2대 지침’(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방법을 담은 정부 지침) 시행에 반발해 한국노총이 합의를 파기하면서 합의문은 휴지조각이 됐다. 민노총이 참여하지 않은 반쪽 합의라는 비판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대화에 특히 공을 들이고 있다. 대타협이 없다면 일자리 창출이 요원하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노사정위가 비정규직, 청년, 소상공인 등의 취약계층을 대변하지 못해 왔다고 진단하고 이들을 참여시키는 이른바 ‘한국형 사회적 대화기구’를 새롭게 만들 계획이다. 한국도 과연 네덜란드처럼 ‘한국병’을 극복하고 제2의 도약을 이뤄낼 수 있을까. 새로 시작된 노사정 대화에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한국의 사회적 대화 연혁 ::

―1998년 1월 15일 노사정위원회 출범
―1998년 2월 9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 체결
―1998년 2월 10일 민노총, 노사정 대타 협안 부결 및 노사정위 탈퇴
―2004년 2월 10일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 약 체결
―2006년 9월 11일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 한 노사정 대타협 체결
―2007년 4월 27일 경제사회발전노사정 위원회로 개명
―2009년 2월 23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민정 합의문 체결
―2015년 9월 15일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사회적 대타협) 체결
―2016년 1월 19일 한국노총, 노사정 합 의 파기 및 노사정위 탈퇴
―2018년 1월 31일 노사정 6자 대표자 회 의 개최

자료: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노사정#사회적 대타협#레이거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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