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시킨 AI라야 산업현장서 통해”

  • 동아일보

SK C&C 산업용 인공지능 ‘에이브릴’ 내년 본격 서비스… 어떻게 개발했나

“말귀만 알아듣는다고 해서 인공지능(AI)이 아닙니다. 데이터를 모으고 AI를 학습시키는 역량 없이는 아무리 훌륭한 AI 알고리즘이 있어도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13일 경기 성남시 SK C&C 분당 사옥에서 만난 이기열 SK C&C ITS사업장(전무)은 최근 공개한 자사 AI 서비스인 에이브릴에 ‘한글판 왓슨’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데 대해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한국에서 왓슨만으로는 AI를 완벽하게 구현하기 힘들다는 것.

지난해 5월 미국 IBM의 AI 왓슨 국내 사업권을 따낸 뒤 에이브릴을 내놓기까지 1년 4개월. 경쟁사들이 AI 스피커, 말귀 알아듣는 로봇 등 기기 개발에 집중하는 사이 SK C&C는 산업현장에서 먹힐 기업 간 거래(B2B) AI 개발에 매달렸다. 이 전무로부터 산업용 AI 개발 현황과 걸림돌을 들어봤다.

SK C&C가 왓슨에 투자한 큰 이유는 ‘딥 큐앤드에이(Deep Q&A)’라는 기술이었다. 질문을 분석하고 예상 답변을 찾아내 정답률(신뢰도)까지 제시해 주는 기술. 왓슨은 이 기술 덕분에 2011년 미국 퀴즈 프로그램 ‘제퍼디’에서 역대 우승자들을 꺾으며 유명해졌다.

왓슨과의 협업 전, 국내 AI는 ‘챗봇’ 수준이었다. 당시엔 질문에 대해 미리 설정한 답변을 내놓는 정도였다. 아무리 많은 답변을 입력해 놓아도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나오거나 정해진 답변이 없으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먹통이 됐다.

하지만 왓슨은 답변을 미리 입력할 필요가 없었다. 디지털로 정리되지 않은 ‘비정형 텍스트 데이터’에서 정보를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문서나 메모, 사람 머릿속에 산재돼 있는 정보를 분석해 법률, 의료, 엔지니어링 등 전문 영역은 물론이고 시장 흐름을 파악하는 ‘마켓 센싱’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어 보였다.

SK C&C는 먼저 석유 가격, 반도체 수요 예측 등 SK그룹의 이슈에 왓슨을 적용해 봤다. 예상대로 왓슨은 신문, 문헌, 애널리스트 보고서 등 비정형 데이터 분석에 탁월했다. 이 전무는 이를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에 비유했다. “의료 등 매뉴얼로 산재된 정보를 전산화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지만 왓슨은 그냥 쭉 읽고 답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 고객을 혹하게 할 만큼 전문가 수준의 답변을 내놓으려면 이런 데이터 외에도 디지털화한 정형 데이터 분석이 있어야 했다. 결국 비정형 데이터 분석은 왓슨으로, 정형 데이터 처리는 구글과 아마존 등의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해서 이를 보완했다.

이후 기술 검증에 나섰지만 이번엔 형편없는 데이터 인프라가 말썽이었다. 은행, 제조업 등 대부분 산업에서 비즈니스 노하우로 불릴 만한 정보는 데이터로 정리가 잘 안 돼 있었다. 고려대병원과 추진 중인 항생제 관리 프로젝트에서도 메모, 책, 논문, 경험 등 중구난방으로 산재된 관련 데이터를 정리하는 일이 선결과제였다.

AI를 학습시키는 일은 또 다른 과제였다. 여러 데이터가 섞여 있고 시스템별로 따로 관리하거나 숨어 있는 데이터가 부지기수였다. 부족한 데이터는 외부에서 사와야 했다. 이처럼 디지털화되지 않은 정보를 통합하는 데에만 최소 1년 이상이 필요했다.

인재 부족도 문제였다. 학교나 연구소에는 알고리즘별 특성과 프로그래밍하는 전문가만 있지, 어떤 산업에 어떤 식으로 적용하면 좋을지에 해박한 ‘산업 적용 AI’ 전문가가 없었다. AI 학생이 공부하기 쉽도록 데이터를 모으고 효과적으로 학습시키는 몽학선생이 절실했다.

SK C&C는 B공장의 품질관리 공정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해당 공장의 내부 전문가들을 학교로 보내 AI 기초 알고리즘 공부를 시켜야 했다. 이달 한국어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를 공개한 것도 대중의 다양한 산업지식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1년여의 검증을 통해 SK C&C는 AI 알고리즘 추천부터 학습, 적용 후 조직관리까지 프로세스 전반을 아우르는 AI 종합 컨설팅 업체로 사업 방향을 정했다. 이 전무는 “아무리 뛰어난 AI라도 활용을 못하면 소용이 없다. AI가 가격 예측이나 의약품 선택 등 문제 해결을 정확하게 제시하는 B2B 서비스를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sk c&c#ai#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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