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물류대란 예상 못했다”는 무능정부에 국가경제 맡길 수 있나

  • 동아일보

한진해운 법정관리에 따른 후폭풍이 글로벌 물류 대란으로 번지면서 정부와 새누리당이 어제 뒷북 대책을 쏟아냈다. ‘한진그룹이 추가 담보를 제공할 경우’ 1000억 원 이상의 장기 저리 자금을 긴급 지원해 한진해운 선박이 해외 항만에 압류되는 상황을 막고, 외교부 해양수산부 기획재정부는 43개국에 스테이오더(압류금지명령)를 승인받을 수 있도록 요청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정의 압박에 조양호 한진해운 회장은 사재 400억 원을 포함한 1000억 원 규모의 자금을 선박 하역 등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대책은 지난달 30일 채권단의 한진해운 지원 거부 때, 최소한 법정관리로 국적 선사가 발이 묶이기 전에 나왔어야 마땅하다.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5일 “기본적으로 화물을 목적지까지 운송하는 책임은 화주와 계약한 한진해운에 있다”고 말한 것도 기본적으로만 옳다. 당초 정부는 다각도로 대응책을 검토했다고 공언했지만 실제로는 물류에 끼치는 영향을 오판했다는 사실이 이번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5일 기자간담회에서 “물류 대란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고백은 박근혜 정부의 실력을 말해준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정부가 법정관리에 앞서 대책반을 미리 꾸려 물류 대책을 수립하고 세계 각국 법원에 협조를 요청했다. 관료들의 역량이 20년 전보다 퇴보했다는 얘기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 3개월 전인데도 정부와 한진그룹은 각기 자기들 살 궁리만 하는 ‘세월호’ 같은 모습을 노출했다. 해운물류비상대책을 마련했어야 할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은 산업은행과 한진 사이를 오가는 연락책 역할만 하는 무책임한 모습이었다. 임 금융위원장은 ‘대주주의 자구 노력이 우선’이라고 되뇌었을 뿐이다. 구조조정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유 부총리는 법정관리 결정 직후 “경제적, 산업적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공허한 발언만 했다. 가장 책임이 막중한 조 회장은 한진해운의 우량 자산을 한진그룹으로 돌려놓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한진해운발 물류 대란은 컨트롤타워 부재, 부처 이기주의, 산업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에 생긴 필연적인 참사다. 이렇게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가 조선 철강 등 남은 구조조정 작업을 이 상태로 추진한다면 산업 개혁은 고사하고 산업의 공멸을 초래할까 걱정스럽다. 한진해운 법정관리 결정 직전 정부, 채권단, 한진그룹 간 논의 과정을 따져 물류 대란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 청문회가 불가피해질 수도 있다.
#한진해운#물류대란#정부#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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