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그룹 차원 증거인멸 포착한 檢 “더 늦출수 없다” 칼 빼들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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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롯데 비자금 의혹 전격 수사]

롯데 본사 압수품 트럭에 싣고 나오는 검찰 10일 오전 9시경부터 롯데그룹 압수수색에 나선 검찰 관계자들이 이날 오후 11시경 서울 중구 을지로 롯데 본사에서 확보한 각종 증거물을 서울중앙지검으로 옮기기 위해 차량에 싣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롯데 본사 압수품 트럭에 싣고 나오는 검찰 10일 오전 9시경부터 롯데그룹 압수수색에 나선 검찰 관계자들이 이날 오후 11시경 서울 중구 을지로 롯데 본사에서 확보한 각종 증거물을 서울중앙지검으로 옮기기 위해 차량에 싣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검찰이 10일 200여 명의 수사 인력을 투입해 롯데그룹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한 것은 더 이상 수사 착수를 늦추다가는 기업 수사의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올해 초부터 롯데 일가 및 계열사의 비자금 조성을 통한 횡령 및 배임, 제2롯데월드 관련 로비 의혹 등 각종 첩보를 축적하면서 본격 수사에 나설 시기를 저울질해 왔다.

그러던 중 법조계를 충격에 빠뜨린 ‘정운호 게이트’가 4월에 불거져 검찰 수사력이 일부 분산됐고 그러는 사이 롯데그룹이 증거를 인멸한 정황이 포착됐다. 14억여 원대 배임수재 혐의를 받는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74)이 경영에 관여한 면세 컨설팅업체 BNF에서는 각종 회사 회계자료 문건 등이 대량 파기됐다. 검찰 관계자는 “최근 신 이사장을 압수수색한 결과 롯데그룹에서도 증거 인멸이 조직적으로 이뤄진 것이 파악돼 부득이하게 어제 영장을 청구해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롯데가 계열사 간 부당 지원으로 축적한 계열사의 부(富)를 비정상적 방법으로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 쪽으로 몰아준 정황을 포착하고 집중 수사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이 과정이 국부 유출과 관련이 있는지 확인할 방침이다.

특히 검찰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61·호텔롯데 대표이사)의 핵심 조직이자 롯데의 컨트롤 타워 격인 ‘그룹 정책본부’가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날 정책본부가 있는 롯데호텔 24, 25, 26층 전부를 압수수색했다. 같은 26층의 신 회장의 집무실, 34층에 있는 부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94)의 거처와 사무실도 수색했다. 검찰의 압수수색은 10일 밤 12시경까지 약 15시간 동안 진행됐다.

검찰이 신 회장의 핵심 측근이자 그룹 2인자 격인 이인원 롯데그룹 정책본부장(69)과 황각규 정책본부 운영실장(61)을 출국금지한 것도 그룹 정책본부의 비중을 크게 보고 있다는 얘기다. 검찰은 롯데쇼핑 백화점사업본부(롯데백화점) 대표였던 신헌 전 사장(62)도 재차 출국금지하고 수사 대상에 올렸다. 신 회장의 다른 측근인 노병용 롯데물산 사장(65·전 롯데마트 사장)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연루돼 출국금지된 상태다.

특히 롯데그룹의 최고 정점인 신동빈 회장의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과 사무실까지 수색한 것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본격 수사가 시작된 첫날 대기업 오너 자택이 열리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점을 감안하면 검찰이 신 회장의 구체적 비리 혐의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날 새벽부터 신 회장 자택 주변을 차량으로 탐문하던 검사와 수사관 7명은 오전 9시경 신 회장의 평창동 고급아파트를 수색했다. 279m²(약 84평)의 아파트는 일본에 가족이 있는 신 회장이 주로 혼자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스키협회 회장인 신 회장은 현재 국제스키연맹 총회와 관련해 출국했고, 미국 엑시올사 인수 건과 관련해 미국과 멕시코 등지를 돌아보고 있다. 롯데 측은 “신 회장이 압수수색과 관련해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신 회장의 지위를 감안해 출국금지나 입국 시 통보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롯데그룹은 한국 경제에 막강한 힘을 휘두르는 기업집단임에도 대부분 상장되지 않아 지배구조는 베일에 싸여 있었다. 그러던 지난해 이른바 ‘롯데가(家)의 난’을 통해 그룹의 불투명한 지분 구조가 일부 드러나기 시작했다.

검찰의 롯데홈쇼핑 수사는 미래창조과학부나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에 대한 수사로 번질 수 있다. 검찰은 롯데홈쇼핑이 ‘공정성 평가항목’에 전직 임원 2명의 배임수재죄 유죄 선고 내용을 기재하지 않고 사업계획서를 제출해 재승인 판정을 받은 데 롯데의 로비가 있었는지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번 수사는 종국적으로 ‘제2롯데월드 건설과 인허가 과정’ 전반의 비리 의혹을 파헤치는 수순으로 옮겨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롯데그룹 창립자인 신격호 총괄회장의 ‘숙원사업’이었던 제2롯데월드 건설은 인허가 과정에서 군이나 정부 핵심 관계자를 상대로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이 숱하게 제기됐다. 이렇게 되면 검찰 수사가 이명박(MB) 정부 등 전 정권 핵심 인사들을 겨냥할 수도 있다.

장관석 jks@donga.com·신나리 기자
#롯데#증거인멸#비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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