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의 다른경제]‘주님’은 청와대 하청장관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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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용 논설위원
홍수용 논설위원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별명은 ‘주님’이다.

부처 내 입지가 절대적이다. 그는 ‘항상 뛰고 있다’는 이미지를 중시한다. 정무 감각도 뛰어나 흠 잡힐 일을 하지 않는다.

이런 주 장관이 일하는 기준은 오직 청와대다. 상사의 유형에는 똑똑하고 부지런한 ‘똑부’, 멍청하고 부지런한 ‘멍부’, 똑똑하고 게으른 ‘똑게’ 등이 있다지만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청와대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부지런히 하는 ‘청부’라는 영역을 개척했다.

“대통령님, 저 여기 있어요”

‘청와대 바라기’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주 장관은 그 적정선을 넘으려 한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은 그에게 바이블이다. 이달 23∼24일 전국 각지 중소기업 현장을 순회하는 ‘수출 카라반’ 행사를 직접 기획했다. 이동거리가 1000km에 이르렀지만 현장의 솔직한 애로를 듣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관료들이 ‘너무 힘든 기업을 부르면 정부 성토장으로 변질되지 않을까’ 우려한 때문인지 비교적 실적이 좋은 기업 중심으로 행사가 꾸려졌다. 이전 정부에서도 중소기업 현장 투어 행사가 있었지만 실제 바뀐 건 없었다. 주 장관의 반짝 이벤트에도 큰 기대감은 없다.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철강업이 1차 구조조정 대상”이라거나 “3월 수출 감소 폭이 줄어들 것”이라는 장관의 돌출 발언이었다. 철강업은 구조조정이 가장 시급한 업종이 아니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 업종은 대마(大馬)가 많이 걸려 있는 조선 해운 건설 석유화학업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 기획재정부가 2014년 말 경제정책방향에서 선제적 구조조정 대상으로 건설, 해운, 조선업을 꼽았던 것 아닌가. 대마가 적은 철강업 구조조정이 손쉽기 때문인가. 주 장관이 청와대에서 받은 지시를 알아야 수수께끼가 풀린다.

수출이 개선되고 있다는 말은 국민을 현혹하는 것이다. 월별 수출 증가율은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서 낸다. 작년 3월 수출(―4.6%)이 크게 부진했던 만큼 올해 3월 수출이 제자리걸음을 해도 1년 전과 비교하면 개선된 듯한 착시효과가 나타난다.

수출 난국을 타개할 의지가 있다면 17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통상장관회담에 승부를 걸었어야 한다. 중국은 연초 삼성SDI와 LG화학 등이 만드는 삼원계 배터리가 장착된 전기버스에 보조금을 주지 않는 비관세장벽을 쌓았다. 통상장관이 회담 끝에 안전성 검사를 한번 해보자고 합의했다. 그런데 그 후 중국 국가에너지위원회 장관급 관료가 자국 언론을 통해 한국 제품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 달라진 게 없다. 그런데도 청와대 당국자는 “주 장관이 이슈로 끌어내 논의한 것 자체가 성과”라고 평가했다. 기업의 속이 타들어가는 것을 알고나 하는 말인가.

밖에선 주눅 드는 산업외교


이달 초 미국 상원 재무위원장이 한국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도를 문제 삼았을 때도 주 장관은 미온적이었다. 다른 나라에는 쓴소리를 못하면서 그저 ‘경제는 외교와 별도로 잘 돌아간다’는 낙관, 장밋빛 전망뿐이다.

주 장관은 조직 구성원을 긴장하게 하는 보스다. 장점을 살리기 바란다. 좌충우돌 전국 투어, 한가한 방문행사 대신 현장탐방이 꼭 필요한 곳을 콕 집어내 숙제를 하나씩 풀어가는 방식이 필요하다. 당장 삼성SDI, LG화학을 찾아가 다음 달 중국이 실시하는 배터리 안전성 테스트 때 도울 게 없는지부터 물어보라.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
#주형환#산업통상자원부#청와대#박근혜#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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