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학원가에 뜨는 ‘월세 공부방’

  • 동아일보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사는 40대 주부 김모 씨는 최근 지인에게서 매력적인 제안을 받았다. “대치동 학원에서 먼 곳에 사는 엄마들이 학원 옆에 원룸(‘공부집’)을 얻어 애들을 모아 놓고 공부를 시킬 건데 함께 하자”는 것이었다. 아이가 학원과 집을 오가는 시간을 절약하자는 취지였다. 엄마들이 1명씩 돌아가며 따뜻한 밥을 지어줄 수 있다는 점도 끌렸다. 보증금 5000만 원에 월세 100만 원을 5명이 나눠 낸다는 점도 솔깃했다. 주변 고급 독서실의 매월 이용료(20만 원) 수준이어서다.

김 씨는 “다른 엄마들이 ‘우리 애는 안 끼워주냐’며 뒷말을 할 수 있어 우리끼리 쉬쉬하며 공부집을 이용한다”며 “우리 애들처럼 학원가 주변 원룸이나 오피스텔로 우르르 들어가는 학생들이 적잖다”고 귀띔했다.

인기 학원가 주변에서 전셋집 구하기도 어렵고, 폭등하는 전세금에 골치를 앓던 학부모들이 월세 공부집이나 고급 레지던스 등 새로운 주거시설로 향하고 있다. 주거비 부담을 피해 묘안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4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대치동과 역삼동, 양천구 목동 등을 중심으로 학원가 인근 원룸이나 오피스텔을 공부방으로 이용하는 수요가 늘고 있다. 대치동의 한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지난해 초부터 전용면적 기준 20m² 안팎 규모의 원룸이나 도시형생활주택을 찾는 학부모들이 많다”며 “대부분 고등학생 학부모들로 2, 3명이 같이 살 곳을 원했다”고 말했다.

강원 원주시에 사는 40대 주부 이모 씨는 중학생 딸과 함께 방학 때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고급 레지던스에 묵는다. 유명한 수학학원이 가깝기 때문이다. 이 씨는 “하루 5만 원을 내면 매일 청소와 세탁을 해주고 이틀에 한 번꼴로 침대 시트도 갈아 준다”며 “애들이 편하게 학원에 갈 수 있어 매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레지던스의 관계자는 “학기가 시작돼도 다른 지역 학부모들이 학원 소개를 받고 애들을 데려온다”며 “객실 안에 넓은 책상, 침대, 냉장고 등 없는 게 없어 몸만 오면 된다”고 전했다.

이런 학부모들은 모두 월세 계약을 선호했다. 최근 들어 이들 지역에서 월세가 급등하는 데 이들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기될 정도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1월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 전월세 주택거래 6461건 중 월세는 3233건으로 절반이 넘었다. 강남 3구 월세 비율이 50%를 넘은 것은 2011년 1월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정부의 공유민박업이 허용되면 좀 더 다양한 형태의 공부방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공유민박업은 국내외 주택 수요자들이 주거용 주택의 빈방에서 숙박료를 내고 최대 120일간 묵을 수 있는 제도다. 박상언 유앤알컨설팅 대표는 “유명한 학원 근처에서 짧은 기간 사는 중고교생이 워낙 많다”며 “공유민박업을 찾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은아 achim@donga.com·천호성 기자
#대치동#학원가#공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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