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창업’ 5060 불황에 줄폐업… 자영업자 부채 위험수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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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사상 첫 1200조 돌파]

한국 경제의 최대 ‘뇌관’인 가계부채가 사상 처음 1200조 원을 돌파했다. 경제성장 속도보다 가계 빚이 더 빠르게 늘면서 가계의 소비 여력이 위축돼 내수부진과 경기침체가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시중은행의 가계부채 연체율이 1% 미만인 데다 상환능력이 양호한 고소득층(소득 4·5분위)의 담보대출 비중이 70%를 차지해 관리가 가능한 수준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빚의 총량이 워낙 빠르게 불어나고 있고 저소득층과 고령층, 영세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의 부채는 언제든 국내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위협 요인이어서 안심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 국민 1인당 2342만 원 빚더미

2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가계신용 잔액은 1207조 원으로 전년 말(1085조3000억 원)보다 121조7000억 원(11.2%) 급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지난해 3분기(7∼9월) 말에 비해서는 41조1000억 원(3.5%) 늘었다. 이를 총 인구 수(5154만 명)로 나누면 1인당 2342만 원에 해당하는 규모다.

부채 총액은 물론이고 분기 및 연간 기준 증가폭 모두 한은이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2년 이후 사상 최대치다. 가계신용은 가계가 은행 보험사 대부업체 등 금융권에서 빌린 돈과 결제하기 전 카드 사용 금액을 합친 것으로 실질적인 가계 빚을 보여준다.

가계 빚이 급속도로 불어난 것은 경기부양을 위한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와 금융권의 저금리 기조가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실제 지난해 늘어난 가계 빚의 60% 이상이 주택담보대출이었다. 주택담보대출은 작년 말 608조800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약 74조 원(13.8%)이 증가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실장은 “부동산 경기 부양책으로 건설투자가 늘어 지난해 경기회복세가 뒷받침됐지만 지금은 가계부채 급증으로 소비가 위축되는 부정적 효과가 더 커지고 있다”며 “정부가 부채의 질 개선과 더불어 총량 규제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자영업자 대출이 가장 취약한 고리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박모 씨(58)는 지난해 30여 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동대문 쪽에 김밥집을 차렸다. 퇴직금으론 모자라 박 씨는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 6000만 원을 받았다. 하지만 장사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 달 전 길 건너에 김밥집이 또 생겼다. 은행 이자를 갚는 것도 빠듯해진 박 씨는 창업을 후회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자영업자 규모는 556만3000명으로 전년도보다 8만9000명이 줄었다. 11만8000명이 줄었던 2010년 이후 5년 만에 가장 큰 감소 폭이다. 장사가 안 돼 문을 닫은 자영업자가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와 기업들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맞물리면서 50, 60대가 치킨집 등 대거 자영업에 뛰어들었지만 경기 침체로 자영업이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서 이들의 빚이 가계부채 리스크를 가중시키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은행의 자영업자 대출규모는 239조3000억 원이다. 은행 외에 캐피털, 저축은행, 대부업체 등 제2금융권 대출까지 합하면 규모는 두 배 이상 커진다. 한은에 따르면 제2금융권을 모두 포함한 자영업자 대출규모는 519조5000억 원(지난해 6월 말 기준)이다. 이 중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70%를 넘는 고위험 대출은 전체의 18.5%를 차지했다. 자영업자 대출이 금융시장의 잠재적인 위험요인으로 부상하는 이유다.

자영업자 대출의 상당 부분을 별다른 소득이 없는 고령자들이 안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말 자영업자 대출 중 50대 이상 고령자의 대출액 비중은 62.5%에 달했다. 은퇴 후 실질적인 소득은 줄고 지출은 늘어나는데 이자까지 갚아야 해 가계부담은 커지는 모양새다.

○ 가계부채 리스크 관리 나서야


가계부채 통계 발표에 맞춰 정부도 이날 별도의 대응 방향을 내놨다. 빚을 갚을 수 있도록 경제성장과 내수활성화를 통해 가계소득을 늘리고, 대출 관행도 분할상환 방식으로 정착시켜 금리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이 대책이 급증하는 가계 빚 문제를 현재 상황에서 제어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가계소득을 높이기 위한 대책은 당장 효과를 보기 어려운 데다 대책의 대부분이 비교적 안전한 주택담보대출에 치중돼 있어서다.

늘어나는 가계 빚은 경기를 더욱 침체시키는 요인이다.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4년 말 기준 164.2%에 이른다. 1년 소득을 다 쏟아 부어도 빚을 갚지 못하는 셈이다. 대출 원리금을 갚느라 가계는 주머니를 닫고, 경기는 더욱 침체되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임수 imsoo@donga.com /세종=신민기 기자
#빚#창업#폐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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