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지난달 말 단행된 2016년 LG그룹 임원 인사에서 유임이 결정되면서 12년째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로 활동하게 됐다. 그룹 내 최장수 CEO로서 앞으로의 장기적 목표에 대해 차 부회장은 “모든 임직원이 능력 이외에 다른 문제로 차별받지 않는 능력 위주의 회사를 만드는 것”이라고 답했다. LG생활건강 제공
《 LG생활건강은 현재 최고경영자(CEO)인 차석용 부회장이 사장으로 취임한 2005년 이후 지난해까지 매출은 4.8배, 영업이익은 9.4배 성장하는 등 매출과 영업이익이 10년 이상 연속 동반 성장하는 이례적인 성과를 냈다. 뷰티 한류(K뷰티)라는 호재까지 맞물려 그는 세계적 경영 저널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가 선정한 ‘2015년 베스트 퍼포밍 코리안 CEO’ 1위의 영예를 안았다. 좀처럼 언론에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던 차 부회장이 1위 선정 소식에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대면 대신 서면 인터뷰 방식을 택하긴 했지만 그의 평소 경영 철학과 비전에 대해 소신 있는 의견을 전해 왔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코리아(HBR KOREA) 12월호에 실린 인터뷰 전문을 요약해 소개한다. 》
―이른바 ‘차석용 효과’의 성공 비결로 많은 사람이 공격적인 M&A와 적극적인 해외시장 진출을 꼽는다. 지금까지 진두지휘했던 전략 가운데 가장 뿌듯했던 사례를 꼽는다면….
“2010년 더페이스샵을 인수한 것은 LG생활건강의 주력 사업인 화장품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어냈다. 더페이스샵은 고가와 중가 화장품 사업만 하던 당시 비즈니스 모델에 저가 화장품군을 보완해 전 가격대를 커버하는 포트폴리오를 확보해야 한다는 판단하에 추진된 인수 사례다. 실제 외환위기 이후 국내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이 양극화되면서 화장품 시장도 빠르게 고가와 저가로 재편됐다. 또한 더페이스샵 인수는 해외시장 진출의 중요한 발판이 됐다.”
―M&A 대상 기업 선정과 관련해 원칙이 있다면….
“지금까지 성공적인 M&A를 이어갈 수 있었던 비결은 먼저 안정적인 사업 기반 위에서 M&A를 실행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명확한 중장기 전략 및 원칙에 부합하는 인수 대상을 엄선해 추진한 것, 세 번째로는 ‘승자의 저주(The Winner’s Curse)’를 최소화한 점을 들 수 있다. 네 번째가 인수 이후 사업 정상화에 필요한 핵심 과제를 조기 실행했다는 점이다. M&A 이후 빠르게 추진해야 할 조직 통합 작업을 위해 인수 검토 단계부터 인수팀을 구성해 인수 후 통합작업(PMI·Post-Merger Integration)을 일관되게 실행했다. 인수팀은 실사 과정에서부터 해당 회사의 문제점 및 개선 방안을 도출하고 조직을 재정비한 후 사업 정상화에 필요한 핵심 과제를 3개월 내에 80%까지 수행했다. 다양한 PMI 진행 경험을 통해 구성원들도 큰 사업을 추진하고,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게 됐다.”
―주로 화장품으로 한 우물을 파는 전략을 편 아모레퍼시픽과 달리 LG생활건강은 공격적으로 사업 다각화를 펼쳐 왔는데 이러한 전략을 펼친 이유는 무엇인가.
“바다에서도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곳에 좋은 어장이 형성되듯 서로 다른 사업 간의 교차 지점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가 창출된다고 생각한다. LG생활건강은 생활용품, 화장품, 음료 등 각각의 사업이 갖고 있는 장단점을 통해 서로의 사업을 보완하고 있는데, 전통적으로 여름에 약한 화장품 사업과 여름이 성수기인 음료 사업이 서로의 계절 리스크를 상쇄함으로써 보다 안정적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보했다.”
―특별한 직원 및 조직관리 노하우가 있다면….
“조직의 역량을 하나로 모아 그 힘이 한 방향을 향하게 하면 엄청난 파워가 나온다. 그러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회사의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가 소통이다. 2007년 3월부터 3개월에 한 번씩 소재를 바꿔 화장실에 CEO 메시지를 게시하고 있는데 올해 벌써 횟수로 9년째를 맞는다. 회사의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에 한자리에 직원들을 모아 놓고 주입식으로 전달하는 단발성 전달 방법에 비해 관심과 파급력이 매우 큰 편이다.”
―본인의 경영 스타일에서 다른 기업들이 어떤 점을 배울 수 있을까.
“특별한 경영 스타일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항상 다음 네 가지를 마음에 담고 경영에 임하려 애쓴다. 첫째, 건설적인 불만(Constructive Discontent)이 많은 조직으로 키워 가고자 한다. 불평을 위한 불만이 아닌 건설적 대안이 있는 불만은 궁극적으로 조직을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둘째, 괜찮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높은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정진하려 애쓴다. 셋째, 단순한 새로움을 넘어서 시장의 ‘판’을 바꾸는 진정한 혁신을 추구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목표하는 바를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실행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일관성 있게 핵심에 집중하고 정직하게 실천에 옮기는 실행력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좋은 실적과 성과는 모두 온 직원이 발로 뛰고 땀 흘린 결과다. 그렇기에 성공의 스포트라이트를 혼자 받는 것이 부담스럽다. 앞으로도 직원들의 ‘치어리더’가 돼 그들을 격려하고 응원하겠다.”
▼ HBR, CEO 순위 선정 어떻게 ▼
기업 명성보다 주주이익 초점… 식음료 산업 두각, 車-전자는 부진
숫자는 정직하다.
한국 최고의 성과를 낸 최고경영자(CEO)들의 순위는 뷰티 산업이 어느새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동력으로 성장했음을 확인시켜 준다. 1위를 차지한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에 이어 2위(공동)인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화장품 한류 열풍을 일으키며 회사를 코스피 시가총액 6위로 올려놨다.
화장품 업계 리더들과 더불어 두각을 나타낸 것은 식음료 산업의 CEO들이었다. 윤석춘(삼립식품·5위), 이강훈(오뚜기·공동 9위), 장완수(크라운제과·11위), 강원기(오리온·12위) 등 무려 네 명의 대표가 15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의 활약에 힘입어 이제 식품업은 중소기업만 하던 내수산업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수출 엔진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반면 전자와 자동차 업종 CEO들은 약속이나 한 듯 다 함께 상위권에서 사라졌다. 국가 대표 역할을 수행해 온 대기업들에 야박한 순위가 나온 이유는 HBR의 CEO 랭킹이 주주 관점에서의 재무적 성과에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또 한국 CEO 랭킹도 글로벌 기준에 맞게 조사대상 CEO의 범위를 서류상 대표이사이면서 실질적으로 경영권도 행사하는 사람으로 좁혔다.
HBR는 2010년부터 세계 최고의 성과를 내는 CEO를 발표했으며 대상은 S&P글로벌1200지수에 속하는 기업들이다. 기업의 명성이나 브랜드 가치 등 정성적·주관적 지표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한편 50위권 중 여성 CEO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15위)이 유일했다. 전체 212명 대상자로 범위를 넓혀도 보령제약 김은선 회장이 추가될 뿐이었다.
한편 이번 랭킹에서 서경배 회장과 공동 2위로는 정몽진 KCC 회장이 선정됐다. △하종환 한국쉘석유 전 사장(4위) △이수영 OCI 회장(6위) △최희문 메리츠종금증권 사장(7위) △이관순 한미약품 사장(8위) △한세실업 이용백 부회장(공동 9위) 등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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