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경제]정부세종청사 앞에 곰떼 나타난 까닭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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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곰 농가, 우리에 5마리 끌고 와… “곰 고기 팔수 있게 가축지정” 시위

25일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건물 앞에서 곰 사육 농민들이 폐업지원비 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위 사진) 이날 ‘상경’한 곰 다섯 마리 중 한 마리가 창살 밖을 쳐다보고 있다. 채널A 제공
25일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건물 앞에서 곰 사육 농민들이 폐업지원비 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위 사진) 이날 ‘상경’한 곰 다섯 마리 중 한 마리가 창살 밖을 쳐다보고 있다. 채널A 제공
박재명 경제부 기자
박재명 경제부 기자
“저기 트럭 들어온다. 모두 준비해.”

25일 오전 11시. 2.5t 트럭이 세종시 어진동 기획재정부 정문 앞에 나타났습니다. 대기하던 경비 인원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트럭을 주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트럭에는 높이 2m 철제 우리 안에 충남 당진과 전남 나주 등에서 온 곰 5마리가 앉아 있었습니다. 서로 뒤엉킨 채 혀로 제 발을 핥거나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 곰들이 이날 시위의 주인공입니다. 모두 히말라야산 아시아흑곰(반달가슴곰), 소위 사육 곰입니다.

국내에는 지난해 말 현재 53개 농가가 곰 998마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정부가 1981년 소득증대 사업의 일환으로 곰 사육을 권장하면서 농민들이 수입한 곰의 후손입니다.

하지만 멸종위기종의 보호 여론이 커지며 수입 및 수출, 도축이 차례로 금지됐습니다. 당초 사육 후 수출을 목표로 데려왔지만 수출은 ‘0건’에 그쳤습니다.

지금은 10년 이상 기른 곰에 한해 웅담 채취용 도축만 허용됩니다. 곰을 길러도 채산성이 맞지 않자 농민들은 “가축으로 지정해 웅담 외에 발바닥이나 고기 등도 팔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반려됐습니다. 그 사이 곰은 번식을 계속해 1985년 500마리에서 현재 998마리까지 늘어나 농민들은 등골이 휘고 있습니다.

이날 곰을 앞세운 시위가 벌어진 건 30년 묵은 ‘사육 곰 해결책’이 무산됐기 때문입니다. 환경부는 내년에 처음으로 곰 농가 폐업지원비 10억 원을 편성했습니다. 곰 한 마리당 304만 원을 지원해 중절 수술을 시키고 폐업 보상에 나서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기재부는 “곰 사육을 국가가 강제하지 않았는데 그 손해를 정부가 책임질 수 없다”며 해당 예산을 삭감한 채 내년 예산안을 국회로 보냈습니다.

김광수 전국사육곰협회 사무국장은 “곰만 보호동물로 규제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며 “지금 상태라면 곰에게 먹이를 주지 않고 굶어죽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갇힌 곰들은 앞발로 창살을 붙잡고 서서 “굶겨 죽이겠다”는 주인의 말을 멀뚱히 듣고 있었습니다. 내년 봄이면 또다시 시작될 곰의 번식과 정부 예산안 사이에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세종=박재명·경제부 jmpark@donga.com
#곰#사육곰#세종청사#곰 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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