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채 KT회장 결국 사의 밝혀

靑 사임압력說… 檢 배임혐의 수사…

이석채 KT 회장(사진)이 3일 오후 이사회에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이어 전 임직원에게 e메일을 보내 이 같은 사실과 함께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이로써 2009년 1월 취임해 지난해 3월 연임에 성공한 이 회장은 임기를 1년 4개월 남짓 남기고 퇴진하게 됐다.

이 회장은 청와대 등으로부터 사임 압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간 매출액 23조여 원, 재계 순위 11위인 거대 민영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외풍으로 물러나게 돼 적잖은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이날 임직원에게 보낸 e메일에서 “회사를 살리는 것이 저의 의무이기에 회사가 마비되는 것을 그대로 지켜볼 수 없었다”며 “아이를 위해 아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솔로몬 왕 앞의 어머니 심정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어 “의혹이 해소될 수 있다면 나의 급여와 성과급도 숨김없이 공개할 것”이라며 결백을 주장했다. 그는 이에 앞서 김응한 KT 이사회 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의를 밝혔다.

○ 정면 돌파 의지 보이다 돌연 사퇴

이 회장의 사의 표명은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열린 ‘아프리카혁신정상회의 2013(TAS 2013)’을 마치고 귀국한 지 하루 만에 나왔다. 그는 지난달 30일 르완다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임기를 채우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이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의 표명은 두 차례에 걸친 검찰의 압수수색이 큰 영향을 미쳤지만 청와대의 압박도 한몫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회장의 거취를 둘러싼 논란은 정권이 바뀐 올해 초부터 본격화했다. 전임 이명박 정권이 낙점한 인사이기 때문에 새 정부 출범에 따라 자진 사퇴할 것이라는 설과 낙마설이 나돌았다. 8월에는 청와대가 이 회장에게 사람을 보내 사임을 종용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석채 “솔로몬왕 앞 어머니 심정으로 결단”
CEO 또 중도하차… ‘정치 외풍’ 논란 일듯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는 지난달 22일 KT를 압수수색한 데 이어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3일까지 KT의 분당·서초·광화문 사옥과 임직원 5, 6명의 주거지 등 8곳을 압수수색했다. 2008년 남중수 전 KT 사장의 횡령 혐의 구속 및 불명예 퇴진과 비슷하다.

수사 초기만 해도 이 회장은 자리를 지키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검찰이 압수수색의 근거로 제시한 KT 소유 부동산의 헐값 매각이나 온라인 교육벤처 OIC랭귀지비주얼 인수는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 회장이 아프리카 출장 때 벌어진 검찰의 2차 압수수색이 사의 표명을 하게 만든 결정적 배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은 이 회장을 포함한 KT의 고위 임원들이 고액 연봉에서 일부를 갹출해 회장의 판공비로 사용하는 관례를 ‘횡령’으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회장은 e메일에서 “저는 전임 사장의 급여체계를 그대로 따랐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사퇴는 하지만 횡령은 저지르지 않았다는 뜻을 명백히 한 것이다.

○ KT “당혹… CEO 리스크 재연”

KT는 조만간 임시 이사회를 열어 이 회장의 사의를 받아들일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의 퇴임이 결정되면 2주 내에 CEO추천위원회가 후보를 이사회에 추천하고 KT는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열어 후임을 결정한다. 후보로는 김동수 전 정보통신부 차관,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 형태근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의외의 인물이 낙점될 가능성도 있다.

KT는 이 회장의 사의 표명에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장 르완다 등 아프리카 국가에 초고속 통신망을 구축하는 글로벌 사업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KT 관계자는 “이 회장이 오랫동안 공들인 수익사업들이 결실을 앞두고 있는데 안타깝다”며 “새 CEO가 선임되더라도 이 사업들은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KT의 수장(首長) 자리가 정권의 전리품처럼 여겨지며 정권에 따라 CEO가 교체되는 일이 되풀이되는 데 대한 논란도 일 것으로 보인다. 2002년 민영화된 KT는 5월 말 현재 8.65%의 지분을 갖고 있는 국민연금이 최대주주다.

재계는 물론이고 정치권에서도 5년마다 되풀이되는 ‘KT 흔들기’를 문제 삼는 발언이 나왔다.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달 30일 “죄가 있으면 처벌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만에 하나 자기 사람을 심겠다는 의도라면 국민을 실망케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청와대는 이 회장이 사의를 밝힌 데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회장의 경영 형태에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검찰 수사는 참여연대의 고발에 따른 것으로 청와대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정호재 demian@donga.com·동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