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세상 탓? 독주 즐기는 여성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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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주류시장 신풍속… 위스키 광고모델 여배우 전격 기용
대형마트 주류 구매 70%가 여성… 판촉물도 위생장갑 등 여성용 등장

《 직장인 권지영 씨(29·여)는 원래 술에는 별 흥미가 없었다. 와인 정도를 홀짝거릴 뿐 소주나 양주는 거의 입에도 못 댔다. 그러던 권 씨가 위스키 마니아가 됐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익대 앞의 위스키·칵테일 바 ‘팩토리’에 들른 뒤부터다. 와인 바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나오려는데 동행한 친구가 권유해 위스키 한두 잔을 마신 것이 시작이었다. 그는 “호기심에 한두 잔 마시다 보니 어느새 위스키의 ‘향’을 즐기고 있었다”고 말했다. 》

20, 30대 직장 여성들을 겨냥한 위스키 바, 보드카 바가 생겨나고 있다. 홍익대 앞의 한 호텔 라운지 바 ‘그레이스 베이’는 여성들을 겨냥해 40도짜리 싱글몰트 위스키 ‘맥캘란’을 칵테일로 만들어 도수를 낮추고, 코스요리처럼 내놓는 코스를 개발했다.

그동안 여성들이 주로 마시는 술은 사케(일본 술), 막걸리, 저도(低度) 소주 등이었다. 하지만 최근 위스키, 보드카 등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독한 술을 찾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 독주(毒酒) 즐기는 여자, 타깃이 되다

변화를 감지한 주류업계는 여성을 타깃으로 한 다양한 마케팅을 쏟아내고 있다. 디아지오코리아는 최근 18년산 위스키 ‘조니워커 플래티넘’ 광고의 메인 모델로 여배우 김소연을 내세웠다. 한손에 술잔을 들고 정면을 바라보는 여배우의 모습은 술자리를 주도하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가수 겸 배우 엄정화가 최근까지 롯데주류의 ‘스카치 블루’ 모델로 활동하긴 했지만 독한 양주 모델로 여성이 등장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장원우 디아지오코리아 과장은 “이제는 남성만 공략해서는 매출이 늘지 않는 시대가 됐다”며 “과거 중년 남성이던 위스키 소비 주체를 젊은 직장 여성에게 맞추려 했다”고 말했다.

여성 고객만 초청해 행사를 여는 업체도 있다. 맥캘란을 유통 판매하는 에드링턴코리아는 최근 여성고객을 대상으로 ‘향 시음회’를 열었다. 에드링턴코리아 관계자는 “술 마시는 경험에서 향이 중요하고, 여성이 특히 향에 민감하다는 데 착안해 기획한 행사”라고 설명했다.

○ 주류 판촉물로 주방타월도

독주를 즐기는 여성이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오세조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사회적 역할에서 남녀 구분이 사라졌고 여성들이 음주문화에 있어서도 남성 못지않게 주체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독주뿐 아니라 전체 술 시장에서 여성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올해 들어 지금까지 이마트 전국 매장에서 술을 사간 사람의 69.6%는 여성이었다. 이 비율은 2011년 68.2%, 지난해 68.5%에서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대형마트 측은 “요즘에는 직접 술을 고르며 홈 파티를 준비하는 젊은 여성들도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이렇다 보니 과거 땅콩이나 조미 오징어 등 안주가 대부분이었던 주류업체들의 판촉물도 최근에는 키친타월, 위생장갑, 튀김용 젓가락 등 주부들이 좋아할 물건으로 바뀌고 있다. 신근중 이마트 주류 담당 바이어는 “보드카나 진 등 독주는 오렌지주스와 섞어 마시는 칵테일 제조법을 병에 붙여놓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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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주#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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