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강남 번화가를 나가보면 말쑥한 정장 차림에 운동화를 신거나 등산용 배낭을 멘 남성들이 눈에 띈다, 고가 브랜드와 저렴한 옷을 맵시 있게 섞어 입은 여성들도 많다. 이렇게 원래 상품의 용도나 이미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여러 가지 물건을 조합해 사용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을 ‘큐레이슈머’라 부른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진열품을 선정하는 사람을 뜻하는 ‘큐레이터’와 소비자를 뜻하는 ‘컨슈머’를 합친 말이다.
큐레이슈머는 스스로의 삶을 꾸미고 연출하는 데 능수능란한 편집형 소비자다. 이들은 기업이 의도한 브랜드 이미지, 제품 사용방식, 그리고 사회적 관습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노하우를 활용해 색다름을 추구한다. 생산자의 원래 의도보다 훨씬 더 잘 사용하는 소비자들인 셈이다.
과거 큐레이슈머는 패션, 자동차 등 특정 분야 마니아들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이제는 각종 통신, 인터넷 기술의 발달과 일반인들의 소비지식 향상으로 빠르게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잘 알려진 노래를 새롭게 편곡해 들려주는 ‘나는 가수다’나 ‘불후의 명곡’ 같은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 것도 같은 맥락이다.
큐레이슈머들은 자의식과 개성이 강해 TV, 신문 광고 같은 기업의 일방적인 마케팅에는 잘 넘어가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을 소비의 목적으로 삼는다. 다른 소비자들과 적극적으로 정보와 체험도 공유한다. 따라서 ‘이것 사세요’와 같은 직접적인 메시지가 담긴 광고보다는 ‘이런 삶의 모습도 가능해요’라는 식으로 이들의 잠재욕구를 우회적으로 자극하는 마케팅이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자기 회사 상품과 어울리는 타사 상품까지도 기꺼이 함께 소개할 수 있어야 한다.
큐레이슈머의 구매욕구를 자극해 성공한 사례로 세계 최대의 가구업체가 된 스웨덴의 이케아를 들 수 있다. 이케아의 매장은 1만여 종의 제품이 진열된 거대한 쇼룸이다. 이 회사는 고객이 원하는 물건만 집어서 나오도록 품목별로 구분해놓던 기존 가구점 진열방식을 버렸다. 고객이 매장 전체를 물 흐르듯이 순회한 다음에야 계산대로 나갈 수 있도록 동선을 일방통행식으로 설계했다. 또 제품 선택을 돕기 위해 줄자, 모눈종이, 연필 등을 곳곳에 비치했다. 다양한 대안들을 한자리에서 비교하기 쉽게 해줘 큐레이슈머의 욕구를 충족시켰다.
이동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seridhl@seri.org 정리=조진서 기자 cj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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