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인 생활습관 탐구… 러-美 안방에 ‘난방한류’ 훈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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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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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일러 대명사 ‘경동나비엔’ 수출기업 되기까지

‘보일러는 내수산업이다. 보일러는 겨울에만 팔린다.’

과거 대표적 내수기업이었던 보일러회사들이 최근 한국식 보일러로 세계시장에서 선전(善戰)하면서 ‘한국에서 겨울에만 팔리는 품목’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7년 약 5만 대에 불과했던 가스보일러 수출은 지난해 약 20만 대로 크게 늘었다. 특히 경동나비엔은 러시아와 미국에서 보일러 및 온수기 시장 1, 2위를 차지하면서 ‘난방 한류’를 이끌고 있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액 중 수출 비중은 34.8%에 이른다.

○ 러시아 안방, 미국의 욕실 점령

지난해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미국 최대 냉난방박람회인 ‘AHR 엑스포 2011’에서 관람객들이 경동나비엔의 가스보일러와 콘덴싱 온수기를 살펴보고 있다. 경동나비엔은 지난해 미국에서 온수기 8만 대를 팔아 미국 온수기 시장점유율 2위를 차지했다. 경동나비엔 제공
지난해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미국 최대 냉난방박람회인 ‘AHR 엑스포 2011’에서 관람객들이 경동나비엔의 가스보일러와 콘덴싱 온수기를 살펴보고 있다. 경동나비엔은 지난해 미국에서 온수기 8만 대를 팔아 미국 온수기 시장점유율 2위를 차지했다. 경동나비엔 제공
경동나비엔이 처음으로 해외 진출을 모색한 것은 1990년대 초반. 생활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면서 도시에는 보일러가 없는 집을 찾기 힘들었고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놔드려야겠어요’라는 광고 카피가 화제를 모으면서 시골에도 빠르게 보일러가 보급됐다. 보일러회사들이 한정된 교체 수요를 두고 다투는 내수시장은 ‘레드오션’ 상태로 접어들었다.

1994년 ‘추운 러시아에 한국식 보일러를 보급하자’는 전략으로 러시아 시장에 진출했지만 중앙난방 중심인 러시아에 개별 난방식 가스보일러 수요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도입된 러시아의 난방방식이 점차 개별난방으로 바뀌고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고급 난방기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1994년부터 10년 넘게 한국형 보일러의 ‘군불’을 지핀 결과 이 회사는 러시아 보일러시장에서 2007년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다.

미국에서는 현지의 낮은 가스압력을 고려해 저압에서도 원활하게 작동하는 가스온수기를 보급해 시장을 독식하고 있던 일본 업체와 경쟁하고 있다. 100만 달러(약 11억 원) 이상 고급주택의 홍보물에 ‘나비엔 콘덴싱 온수기’가 설치돼 있다는 점이 세일즈 포인트로 부각되기도 했다.

○ 한국식 난방의 현지화 전략

보일러 기술의 핵심은 생활 패턴이다. 에너지기술연구소 직원 100여 명은 각국 사람들의 생활습관과 현지 가스성분, 압력, 물성분 등을 연구해 한국식 보일러에 해외 현지 특성을 반영했다. 필요하면 미국과 러시아에 직접 가서 현지인의 생활을 다각도로 조사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경우 가스성분과 물성분은 물론이고 기온, 풍량, 전압, 주민들의 생활 패턴까지 상세히 조사해 한국식 가스보일러를 러시아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현지형으로 탈바꿈시켰다. 전압이 불안정해도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했고 러시아의 겨울 강풍이 배기가스구 안으로 역순환을 해도 불완전연소 없이 보일러를 가동시키는 방법을 찾아냈다.

미국에 열효율이 높은 순간식 온수기를 보급하기 위해서는 낮은 가스압력에 맞게 설치된 기존 배관시설로는 한계가 있었다. 가스배관시설까지 공사하면서 순간식 온수기로 교체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경동나비엔은 미국 시장에 맞게 낮은 압력에서도 원활히 작동하는 콘덴싱 가스온수기를 개발해 배관공사 없이도 설치할 수 있는 순간식 온수기를 보급하기 시작했다.

제품이 현지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하는 데도 힘을 쏟았다. 보일러의 ‘엔진’격인 스테인리스 열교환기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안정화 단계까지 실패한 2만5000개의 제품을 폐기하기도 했다.

최기영 기획실 팀장은 “처음에는 좌절도 많이 했지만 열심히 연구하고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꾸준히 시장을 파고들면 결국에는 제품력을 인정받는다는 교훈을 얻었다”며 “한국의 보일러로 세계의 안방을 훈훈하게 달구겠다”고 말했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경동나비엔#보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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