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문제는 중산층이야,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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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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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민 경제부 기자
하정민 경제부 기자
경기 용인시의 한 아파트에 전세를 살고 있는 회사원 구모 씨(42)는 최근 집주인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다급한 목소리의 집주인은 “1억 원만 빌려 달라”고 요청했다. 구 씨는 “순간 누가 세입자이고 누가 집주인인지 헷갈렸다”며 “큰 집을 갖고 좋은 직장에 다닌다고 모두 부자는 아닌 모양”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구 씨에게 전화를 건 집주인은 대기업체 부장으로 근무 중인 정모 씨(47)다. 연봉만 8000만 원이 넘는 정 씨는 최근 계속된 집값 하락의 여파로 집을 팔아도 은행대출과 전세금을 갚지 못할 상황에 내몰리자 급전을 찾아 나선 것이다.

▶본보 5일자 A3면 “집 팔고 전세금 돌려주면 거리 나앉을 판”

부동산 경기 침체의 장기화로 깡통주택이 양산되면서 정 씨 같은 사람이 18만5000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부채액만 58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정 씨 같은 이들을 겨냥한 정부 대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부동산정책을 담당하는 국토해양부의 한 고위당국자도 이런 점을 의식해 “가계부채의 진짜 문제는 중산층인데도 대책이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서민에만 집중되고 있다”며 “전쟁으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병원은 안 짓고 앰뷸런스만 보내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김현아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요즘은 돈 많은 사람이 집값 하락 위험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전세를 사는 시대”라며 “더이상 ‘집 있는 사람=강자’ ‘집 없는 사람=약자’라는 이분법이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우스푸어가 된 중산층을 살려 이들이 집을 가지고 안전한 노후를 보내도록 해야 정부지출도 줄이고 경제성장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선거전략가 제임스 카빌은 1992년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구호로 무명의 아칸소 주지사 빌 클린턴을 미국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그는 최근 ‘문제는 중산층이야, 바보야(It’s the middle class, stupid!)’라는 책을 내고 11월 미국 대선의 승패가 ‘붕괴된 중산층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에 달렸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부동산발(發) 가계부채 문제로 신음하는 한국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하정민 경제부 기자 dew@donga.com
#부동산#중산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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