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카페]‘파생상품 민원’ 당사자끼리 해결? 감독업무 포기한 황당한 금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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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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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형준 경제부 기자
황형준 경제부 기자
“이 민원내용은 해당 금융회사의 영업행위 및 내부경영에 관련된 사항으로 우리 원이 처리하기보다는 해당 금융회사에서 처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사료됩니다.”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파생상품인 금리스와프에 가입돼 청산비용만 1800만 원가량을 물게 된 자영업자 오모 씨가 제기한 민원에 금융감독원이 내민 답변서의 한 대목이다. 지난해 10월 A은행 직원을 믿고 10억 원을 대출받은 오 씨는 금리가 싼 B은행으로 대출을 옮기려 하자 중도해지 수수료를 포함해 3000만 원이 넘는 돈을 물어내라는 요구를 받았다.

▶본보 25일자 A16면 10억 대출 중도상환… 헉, 수수료가 3297만원

오 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A은행 직원이 고정금리 상품으로 대출해주겠다는 말만 들었을 뿐 파생상품에 가입한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A은행 관계자들은 “나중에 전화로 확인까지 했으니 설명의무를 다했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아는 직원이 소개한 대출을 놓고 어느 고객이 사후 확인 전화에 주의를 기울일까. 더구나 일부 은행 직원들은 확인 전화가 걸려오면 무조건 ‘예’라고 대답하라고 조언(?)하는 것이 현실이다. 오 씨에게 파생상품 계약서를 내주지 않은 점도 은행의 잘못이다.

‘잘못이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A은행 못지않게 금감원의 민원처리 방식 역시 납득하기 힘들다. 금감원의 답변서는 은행이 형식적 절차를 이행했으니 당사자끼리 잘 합의하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A은행 본점에서 오 씨에게 담당자로부터 파생상품의 손실 가능성에 대해 설명을 들었는지 전화로 확인을 한 만큼 오 씨가 파생상품 가입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보기 어렵다고 금감원은 판단한 셈이다.

이러한 판단은 금융회사 일선 창구에서 별다른 설명 없이 ‘여기하고 여기, 형광펜으로 줄 친 곳에 서명하세요’라고 서류 처리를 하는 실태를 금감원만 모르는가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오 씨가 민원을 제기하자 A은행이 비용 800여만 원을 깎아준 것도 ‘도둑이 제 발 저린’ 식의 양보(?)는 아니었을까.

오 씨 사례를 보면 고객들은 아무리 간단한 금융상품이라도 꼼꼼하게 검토하지 않으면 뜻밖의 손해를 봤을 때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금감원이 5월 금융소비자보호처를 왜 새로 설치했는지 궁금하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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