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직원이 “기다려보라” 말할 때는…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27일 03시 00분


투자금 임의매매 분쟁 급증… 지난해 상반기의 3배로 늘어
“이의제기 늦으면 배상 못받아”

투자자 강모 씨는 “증권사 직원이 내 계좌를 가지고 마음대로 투자했다가 1440만 원의 손실을 봤다”며 올해 4월 한국거래소에 분쟁조정 신청을 했다. 강 씨는 “이 직원이 ‘좋은 회사는 아니지만 단기적인 호재가 있다’고 말해 투자를 결정했는데 해당 회사의 상장이 폐지됐다”고 주장했다. 증권사 직원은 강 씨가 계좌 비밀번호를 알려 줄 정도로 친분이 두터운 사이였다.

주식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강 씨와 같은 상황에 처한 투자자들이 제기한 임의매매 관련 분쟁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 접수한 임의매매 관련 분쟁조정 신청은 8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3배로 늘었다. 임의매매는 증권사 직원이 고객 주문 없이 주식을 사고파는 것으로 불법이다.

이처럼 분쟁조정 신청이 늘어난 것은 유럽발 경제위기 등으로 증시가 급등락을 거듭한 탓이다. 시장감시위원회 관계자는 “증시 등락을 예측하기가 힘들다 보니 증권사 직원에게 의존하는 투자자가 많아졌고, 이 과정에서 손해를 보게 되자 증권사를 향해 불만을 쏟아 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분쟁조정 신청인들은 대부분 고령자이거나 주식 투자 경험이 적었다.

분쟁조정 신청 건수는 늘었지만 임의매매로 확정 판정된 사례는 많지 않았다. 강 씨도 증권사 직원이 사전에 강 씨의 동의를 얻은 사실이 밝혀져 임의매매가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다. 강 씨는 증권사 직원과의 통화에서 직원이 “해당 종목을 사 보자”고 권유하자 “돈이 더 들어가느냐”고 물었고, 직원이 “아니다”라고 답하자 “그럼 그렇게 하라”고 대답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매수가 완료됐다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받은 뒤 거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황우경 시장감시위원회 분쟁조정팀장은 “투자자 피해 규모가 크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투자자의 위임이 있었거나, 사후에 추인이 이뤄졌다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임의매매로 결론을 내릴 만한 상황이지만 투자자가 적기에 대처하지 않아 손해배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황 팀장은 “증권사 직원이 임의매매했다는 것을 아는 순간 바로 이의를 제기해야 하는데 ‘기다려 보라’는 직원의 말에 넘어가 빨리 대처하지 않으면 손해배상을 받지 못한다”며 “비슷한 상황에 처한 투자자들은 이 점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올해 상반기에는 총 863건의 민원·분쟁이 접수돼 지난해 상반기보다 5.2% 감소했다. 분쟁유형별로는 전산장애 관련 민원·분쟁이 164건으로 가장 많고 간접상품 관련(148건), 임의매매(88건), 부당권유(47건) 등의 순이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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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주식매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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