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 주재로 열린 ‘해외건설기업 최고경영자(CEO) 조찬간담회’는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이날 행사에서 일감 부족과 주택경기 침체로 힘들어 하던 건설사 CEO들이 모처럼 즐거워한 이유는 해외건설시장에서 거둔 높은 성과 때문이다.
국토부는 올해 말까지 해외공사 수주액이 지난해 사상 최고치(716억 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580억 달러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행사에 참석한 A사 사장은 “지난해 실적에는 아랍에미리트에서 따낸 186억 달러짜리 원전공사가 포함돼 특수한 경우에 해당한다”며 “내실 면에서 올해가 지난해보다 진일보한 성과를 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1966년 1100만 달러 남짓에 불과하던 수주액이 56년 만에 5200배 이상 커지면서 덩치뿐만 아니라 질적인 성장도 이뤘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내년 수주액이 역대 사상 최고기록을 갈아 치울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처럼 국내 업체가 해외건설시장에서 폭발적인 수주세를 이어갈 수 있는 가장 큰 원인은 높은 기술력이 요구되는 산업설비 부문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산업설비에는 발전소 화학공장 가스처리시설 정유공장 제철소 정유시설 가스저장시설 등이 포함된다. 올해 수주물량의 72%가량이 산업설비 부문에서 나왔다. 반면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국내업체의 해외공사 수주에서 절반가량을 차지한 건축은 14%로, 30%대를 유지하던 토목은 10% 밑으로 각각 떨어졌다. 토목과 건축은 중국과 아시아지역 국가들이 저임 노동력을 앞세워 덤핑 수주에 나서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수익성도 떨어지고 있다. 국내 업체들은 2000년대 접어들면서 이런 경쟁을 피할 수 있는 산업설비에 진력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국내 건설사들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는 수주 공사의 발주 형태다. 1960∼90년대 국내 업체들이 따낸 해외공사의 절반가량은 기술경쟁력 외의 요인이 작용할 여지가 많은 ‘지명경쟁 입찰방식’으로 발주된 것들이었다. 그런데 2000년대 이전 7∼23% 수준에 머물던 공개경쟁 입찰방식 공사물량이 2000년대 들어서 35% 수준으로 높아졌다. 지난해(53%)와 올해(44%)는 전체 수주 물량의 절반 수준까지 치솟았다. 세계 기업들과 투명한 기준을 놓고 경쟁한다는 얘기다. 해외공사 수주액이 급증한 또 다른 요인은 국내에서 일감을 찾지 못한 국내 기업들이 활발하게 해외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 이전까지 해외시장에 신규 진출한 업체는 매년 20개를 넘지 못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급증하기 시작해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는 매년 100곳 이상의 업체가 해외로 진출했다. 올해에도 23일 현재 73개사가 새로 해외시장 개척에 나섰다.
다양한 업체가 해외로 진출하면서 수주 지역이 다변화하고 있는 점도 고무적이다. 해외건설협회 김태엽 정보기획실장은 “미래 잠재 시장으로 여겨지고 있는 남미에서 올해 61억 달러(23일 기준)를 수주하면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고 우즈베키스탄 등 독립국가연합(CIS) 지역에서도 수주 물량이 큰 폭으로 늘고 있다”며 “과거처럼 기름값 폭락 같은 중동지역 리스크로 국내 업체의 해외 수주 물량이 크게 감소하는 일은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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