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경제]회사 달력 못만들고 끙끙대는 한전 발전자회사 6곳 ,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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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사태에 한전 재통합론 부상 ‘어쩌나’

한국전력공사의 발전자회사 6곳은 최근 고민에 빠졌습니다. 내년도 홍보용 달력을 예년처럼 한전과 함께 만들어야 할지 헛갈리기 때문입니다. 보통 9월 안에 달력 제작을 의뢰해야 연말에 나눠줄 수 있습니다.

전임 김쌍수 한전 사장이 재직할 때 이들 자회사는 한전과 공동으로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사소한 일까지 함께한 것은 이른바 ‘하나의 한전(One kepco)’ 정책 때문이죠. 김 전 사장은 “6개 발전사와 한국전력거래소, 한전을 하나로 합쳐야 업무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항상 강조했습니다. 달력의 공동 제작도 이런 원칙의 작은 성과물입니다.

하지만 자회사들은 이런 정책에 불만을 갖고 있었습니다. 분리된 지 10년이 넘은 상황에서 회사를 다시 합치자는 주장도 그렇거니와 달력 같은 사소한 문제까지 간섭하는 한전의 태도가 못마땅했던 겁니다. 발전사의 한 관계자는 “달력을 제작할 때 똑같이 비용을 내고서도 한전의 이름은 크게 들어가고, 자회사의 이름은 작게 들어가 홍보 효과가 작다”며 푸념했습니다. 일부 발전사는 공동 달력 외에 별도로 달력을 제작해 ‘몰래’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자회사들은 이번에 김 사장이 물러나자 업무의 독립성을 되찾을 것이라고 은근히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대규모 정전 사태가 터지면서 ‘전력산업의 수직재통합론’이 일각에서 흘러나오자 업무 간섭이 더 커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생겼습니다. 김중겸 신임 한전 사장의 경영 방침을 파악하지 못한 점도 불안거리입니다.

국내 전력산업 개편은 2001년 한전에서 발전자회사를 분리하면서 밑그림이 그려졌지만 노조와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태입니다. 정부 용역을 받은 한국개발연구원은 지난해 7월 전력산업구조 개편을 재검토하면서 현재의 분리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에 대해 전력회사들이 재통합되면 자회사의 지방 이전 계획이 백지화되기 때문에 지역주민의 반발을 우려한 정치적 결정이라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대규모 정전 사태로 국내 전력산업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발전사 관계자는 “한전과 자회사의 달력 만들기 고민은 국내 전력산업 개편의 모호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해석합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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