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방영되는 TV 주말연속극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급히 돈이 필요한 한 게임 개발자가 ‘종로백곰’으로 불리는 사채업자를 찾았다. 이 사채업자는 “나는 ‘머리 검은 짐승(사람)’은 믿지 않는다”며 확실한 담보를 요구했다. 이때 대화를 지켜보던 사채업자의 예비 며느리가 끼어들었다. “사람이 아파트보다 더 확실한 담보”라며 미래의 성장성을 보고 돈을 빌려주라고 반박한다. 투자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 장면은 가치평가의 정곡을 짚고 있다. 예비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각각 투자의 양 극단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시어머니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금 회수, 즉 원금 보장이다. 반면 며느리는 “이 사람이 미래에 김택진 엔씨소프트 창업주같이 될지 누가 아느냐”며 투자 사업의 성장성을 중시한다. 》 투자나 기업 인수합병도 마찬가지다. 특정 기업, 자산, 프로젝트, 인물의 가치를 평가할 때 이 두 관점은 항상 충돌한다. 한쪽은 현재의 상황과 투자 원금의 회수를, 반대쪽은 향후 성장성을 더 중시한다. ‘투자자의 딜레마’다. ‘종로백곰’과 예비 며느리의 대화 속에 나타난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DBR(동아비즈니스리뷰) 84호(2011년 7월 1일자)는 스페셜리포트에서 투자 성과를 극대화하는 투자 가치평가 전략을 심층 분석했다. 다음은 내용 요약. ○ 회사의 상황과 제약 요건을 파악하라
투자 기간, 기대 수익률, 투자 자산의 성격 및 규모, 다른 소득원의 유무 등 투자자의 상황과 제약 요건에 따라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먼저 회사의 상황이 위험을 감수해도 좋은 예비 며느리 쪽인지, 원금 보장을 따지는 예비 시어머니 쪽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연간 15%의 수익이 기대되는 신규 사업이 있다고 가정하자. 보수적으로 가치평가를 해도 최소 연 10%의 수익이 가능할 듯 보인다. 엄청난 고수익이다. 그러나 5년이 지나야만 투자 원금 및 지난 5년간 발생한 수익을 한꺼번에 돌려받을 수 있는 사업이라면 어떨까. 회사의 보유 자금이 넉넉하고 현재 핵심 사업의 성장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다면 예비 며느리의 관점에서 해당 신규 사업의 가치평가를 진행해도 무방하다. 반면 현재 재무구조가 탄탄하지 않은 회사가 단순히 높은 수익률만 기대하고 며느리처럼 행동하면 당연히 투자 위험이 커진다. ○ 돈의 값과 자사의 신용 상태를 파악하라
국내 선박 투자자들은 2000년대 중반 자기자본(equity) 5%에 95%의 대출(debt)을 끼고 대대적인 투자를 해 ‘대박’을 터뜨렸다. 자기자본을 거의 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연 100%를 넘는 투자도 많았다. 이는 돈의 값이 쌌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과도한 부채를 사용한 이런 ‘레버리지 투자’는 금융위기 이후 파국을 맞았다. 투자자들은 경기가 급락하고 이자가 급등하자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를 갚느라 허덕였다. 결국 2008년 이후 수많은 선박 투자자가 파산했고, 돈을 빌려 배를 사거나 장기용선 계약을 했던 해운회사들도 무너졌다. 투자 계획이나 신규사업 진출에 대한 가치평가에 앞서 회사의 현금 보유 상황, 대출 상환 능력, 신용등급 변화 추이에 대한 상세한 파악이 필요하다. 투자를 단행하기로 했다면 시중 금리의 변화, 대출 한도와 상환 구조, 사업이 차질을 빚을 때 추가 자금 조달 방안 등에 관한 구체적 계획을 확보해야 한다. ○ 매출과 이익을 모두 살펴라
필자의 회사는 작년에 한 자동차 부품회사에 대한 투자를 검토한 적이 있다. 최근 몇 년간 영업이익률이 상당히 안정적인 기업이었다. 하지만 고민 끝에 투자를 포기했다. 현재는 물론이고 중장기 수익성 전망이 좋아도 매출이 급격히 하락할 위험이 있다는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대기업 두 곳에 매출의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었는데, 이 거래는 대주주의 개인적 친분으로 맺어진 것이었다. 현재의 대주주가 지분을 매각한다면 회사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대기업이 떨어져 나갈 수 있었다. 이런 점 때문에 해당 기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할 수 없었다. 매출과 수익이 동시에 늘어나는 회사를 찾아보기란 극히 어렵다. 하지만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꾸준히 유지하는 회사를 찾아낸다면 큰 투자 기회를 잡을 수 있다. ○ 투자 대상의 경기 주기를 파악하라
특정 기업이나 프로젝트에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면 해당 산업의 특징이 경기 방어적인지, 경기 수혜적인지 잘 구분해야 한다. 전력이나 가스 등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재화를 공급하는 산업은 경기 방어적이다. 아무리 경제 상황이 나빠져도 소비가 쉽게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항공, 해운과 같은 산업은 경기 변화에 매우 민감하다.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물동량이 감소하고 운임도 떨어진다. 이런 경기 수혜적인 산업은 당연히 투자 위험도가 높고 투자안의 가치를 낮추는 요인이 된다. 해운업계가 호황일 때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한 생명보험회사는 지난해 약 60%의 손해를 보고 선박 관련 투자를 접었다. 경기 수혜적 산업의 투자 위험을 간과한 탓이다. ○ 적절한 출구전략과 오너십
가치평가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인은 투자안의 출구전략, 즉 자금 회수 방법이다. 단기간 내에 증시 상장이나 지분 매각 일정이 잡혀 있는 회사라거나, 투자한 사업이 잘될 경우 투자자들에게 투자 이익을 공유해주는 회사라면 당연히 해당 기업의 가치는 다른 기업보다 더 높게 평가받는다. 오너십도 빼놓을 수 없다. 많은 외국계 투자은행 전문가들은 최근 몇몇 한국 대기업이 세계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로 확실한 오너십을 꼽은 바 있다. 강력한 오너십은 무모한 투자에 빠지는 약점도 있지만 특정 사안에 대한 대처와 의사결정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도 있다.
○ 자신만의 눈으로 투자 대상을 보라
“투자업계로 전직한 뒤 수많은 경쟁입찰에 참여했다. 처음엔 남들보다 비싼 값에 사지 않으려고 집착했다. 결국 이도 저도 아닌 가격만 써냈고, 알짜배기 회사를 놓친 적이 많았다. 비싼 값을 써내더라도 그만한 투자 가치가 있고, 우리 회사와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면 무슨 문제겠는가. 지금은 최대한 경쟁자들과 다른 가격을 써내려고 노력한다.” 전직 증권 애널리스트였던 한 사모펀드 관계자의 얘기다. 모든 가치평가는 주관적이다. 그래서 투자는 과학이 아닌 예술이란 말도 있다. 가치평가의 성공은 얼마나 고유한 눈으로 자신에게 최고로 적합한 투자 대상을 발굴하고 이를 평가하느냐에 달려 있다. 숫자에 연연하는 태도부터 버려야 한다.
김홍기 메티스 인베스트먼트 전무 hongkikim@metisinvest.co.kr@@@ 정리=박용 기자 parky@donga.comr@@@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고품격 경영저널 동아비즈니스리뷰(DBR) 84호(2011년
7월 1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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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도 높이는 고객관리 노하우
▼ MIT 슬론 매니지먼트 리뷰
일과 학업을 병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브렌다는 인터넷을 통해 식료품을 판매하는 피팟(Peapod)의 열성 고객이다. 브렌다가 열흘 남짓한 간격으로 온라인상에서 식료품을 주문하면 남편이 인근 가게에서 받아오기만 하면 됐다. 브렌다는 서비스 이용 두 달 만에 피팟에 ‘중독’돼 다른 매장에서는 식료품을 구매하지 않게 됐다. 하지만 몇 달 뒤 날벼락이 떨어졌다. 피팟이 사전 공지도 없이 식료품 배송 정책을 변경해 브렌다가 식료품을 받으려면 집에서 차로 30분이나 떨어진 곳까지 가야 했기 때문이다. 브렌다가 엄청난 배신감과 분노를 느낀 것은 물론이다. 제2의 브렌다를 막으려면 고객관계관리(CRM)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구체적인 방법론과 통찰을 제시한다.
애매모호함이 창의력 기른다
▼ 마인드 매니지먼트
유럽인들에게 소(cow)는 고기와 우유, 가죽을 갖게 해 주는 존재다. 하지만 인도인들에게 소는 숭배의 대상이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선물(present)은 좋은 의미로 사용된다. 하지만 어떤 문화권에서 선물은 뇌물과 비슷한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흔히 명료한 소통을 위해 객관적인 사실과 데이터에 근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좀 더 생산적이 되기 위해서는 대상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규정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서로 다른 사람이 어떤 대상에 대해 ‘똑같은’ 개념을 갖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위에 예로 든 소와 선물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명확한 개념 정의가 자칫 우리의 생각을 얽어맬 수도 있다는 점이다. 특히 창조성이 강조되는 시대에는 명료함보다 애매모호함이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도 있다. 애매모호함의 가치를 탐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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