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기자의 That's IT]구글도 애플도 ‘빨리빨리’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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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다녀왔습니다. 구글이 주최한 ‘I/O 2011’이라는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는데 ‘깜짝 선물’을 받았습니다. 삼성전자가 아직 판매도 하지 않은 새 태블릿PC ‘갤럭시탭 10.1’을 구글과 함께 참가자들에게 하나씩 나눠준 겁니다.

이 제품을 써본 세계 각국의 프로그래머와 기자들은 감탄을 쏟아냈습니다. 삼성전자가 이 제품을 선보이겠다며 시제품을 발표한 게 올해 1월이었는데 그때는 두껍고 무겁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3월 애플이 갤럭시탭보다 훨씬 얇고 가벼운 ‘아이패드2’를 내놓자 삼성전자가 불과 한 달여 만에 제품 설계를 뒤집어 새 갤럭시탭을 내놓은 거죠. 아이패드2와 비교해 무게와 두께 모두 뒤질 데 없었습니다.

그래서 구글이 주최한 행사였지만 삼성전자도 이번 행사에서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냈습니다. 갤럭시탭 10.1은 물론이고 새로 구글이 선보인 노트북컴퓨터 ‘크롬북’도 삼성전자의 제품이었고 미국 통신사 버라이즌이 4세대(4G) 통신서비스를 선보인다며 제공한 무선모뎀도 삼성전자가 만든 기계였으니까요. 이런 기계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시장을 앞서 나가는 제품이란 것이죠. 너무 이른 기술이라 실패할 가능성도 높았습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런 시장에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이번 행사에서 구글은 월 사용료만 내고 빌려 쓰는 노트북 크롬북을 선보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사용된 ‘크롬’이라는 운영체제(OS)는 2009년 개발이 시작됐고 1년여 만인 지난해 말에 이 OS를 사용한 노트북을 공개했습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빠른 속도였습니다. 그 뒤 불과 6개월이 지나자 “다음 달부터 이 노트북을 기업과 학교에 판매하겠다”고 발표한 겁니다.

이런 정신없는 스피드는 올해 4월 구글의 새 최고경영자(CEO)가 된 창업자 래리 페이지가 주도한다고 합니다. 그는 한때 구글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불필요한 시간을 허비할까 봐 모든 중간관리자를 없애기도 했을 정도로 급진적입니다. 구글에서는 “페이지는 1000분의 1초 단위로 속도를 잰다”는 말까지 나오는 형편입니다. 직원 2만 명이 넘는 회사를 작은 벤처기업처럼 움직이겠다는 건데, 실패하면 실패에서 배우고 다시 도전하면 되지만 속도가 느리면 해볼 기회조차 놓친다는 것이죠.

최근에는 미국 경제지 포천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애플의 독특한 의사결정 구조를 설명해 화제가 됐습니다. 이들도 엄청나게 빨랐습니다. 스티브 잡스 CEO가 몇 명의 수석부사장에게 보고를 받고, 각 수석부사장은 또 책임자들에게서 보고를 받는 아주 단순한 구조 덕분입니다. A가 B에게 보고하고, C는 참조하고, D는 주요 회의에 배석하는 식의 복잡한 의사결정 방식은 애플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기업들의 특징은 예나 지금이나 ‘빨리빨리’입니다. 요즘과 같은 무한 속도경쟁 시대는 우리 기업들이 다시 한 번 능력을 발휘할 절호의 기회일 듯합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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