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MB 한마디에 ‘전액환수’ 초강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28일 03시 00분


■ 저축銀 ‘편법인출’ 일파만파

금융감독원이 저축은행 부당인출 예금을 전액 환수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데는 이명박 대통령의 ‘질책’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영업정지 전 예금 인출 사태에 부실하게 대처하고, 예금 환수에 대해서도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다가 이 대통령이 26일 “저축은행이 왜 이렇게 모럴 해저드가 심해진 상황까지 갔느냐. 철저히 조사하고 엄격히 대응하라”고 지시하자 ‘전액 환수’라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국회가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검찰도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면서 사면초가에 몰린 것도 금감원이 강경 방침으로 돌아선 배경이다. 이번의 ‘나쁜 선례’를 방치할 경우 하반기에 실시될 저축은행 추가 구조조정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전액 환수 방침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 금융감독 당국 ‘강공’ 모드로

부당인출 예금을 환수하는 문제와 관련해 당초 금감원의 태도는 미온적이었다. 금감원은 25일 VIP 고객의 예금 인출과 관련해 “사실로 확인된 게 없다”고 부인했다. 26일에도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이 “환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요구했으나 금융감독 당국은 “법률적 검토를 거쳐야 할 사안”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26일 이 대통령의 질책이 알려지자 금감원의 태도가 급변했다. 권혁세 금감원장은 27일 “전액 환수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해 사실상 전액 환수 방침을 못 박았다.

금감원이 환수 조치의 근거로 찾아낸 것은 민법상의 ‘채권자 취소권’이다. 채무자(저축은행)가 채권자(예금주)에게 해(害)를 끼치는 행위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행동에 옮겼을 때 채권자가 그 행동을 취소시켜 달라고 법원에 청구할 수 있는 권리다. 저축은행 영업정지가 내려지면 5000만 원 초과 예금액은 저축은행의 다른 자산을 매각한 금액과 합쳐 이해관계자들에게 정산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사전에 부당한 방식으로 대량 인출이 일어났다면 차후 피해자들이 받아야 할 돈이 줄어 다른 고객들에게 피해를 주는 만큼 채권자 취소권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게 금감원의 해석이다.

○ 예금 환수는 ‘산 넘어 산’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의 반응은 다소 회의적이다. 우선 VIP 예금주와 은행 임직원들이 다른 예금주들을 ‘해할’ 목적으로 예금을 빼갔는지에 대한 의견부터 엇갈린다. 한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는 “예금주 가운데 지인에게만 미리 알려줘 예금계약을 해지하고 반환했을 경우 다른 예금주에 대한 사해(詐害) 행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김재형 서울대 법대 교수는 “저축은행과 일부 고객이 공모해서 선량한 고객을 해할 의사를 갖고 빼갔다는 것을 피해를 본 선량한 고객들이 증명해야 하지만 쉽지 않은 부분”이라고 밝혔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채무자가 특정 채권자와 공모해 부당하게 채무를 우선 변제했다면 나머지 채권자에 대한 사해 행위로 볼 수 있다. 즉, 영업정지 직전 예금을 인출한 예금자(특정 채권자)들이 사전에 저축은행(채무자)과 공모한 사실이 인정되면 불법성이 인정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다른 예금주들이 소송을 내더라도 이 판례의 취지대로 예금을 전액 환수할 수 있을지는 사실관계 인정 여부에 따라 다르다. 최종 판결까지는 1, 2년이 걸리는 데다 승소하더라도 돌려받는 금액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여 실효성이 적다는 의견도 있다.

소송을 누가 진행할지도 관건이다. 민사소송인 만큼 채권자인 예금주가 채무자인 저축은행을 대상으로 취소권을 행사할 수 있다. 예금보험공사가 해당 저축은행에 투입한 돈이 있다면 예보도 행사 주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부당 예금인출이 일어난 시점은 예보가 예금보험기금을 투입하기 전이어서 채권자 자격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예보 관계자는 “예금 인출 시점에 채권자가 아니어서 소송을 할 수 없는 구조”라면서도 “예금보험기금을 투입할 때부터 채권자 권리를 승계하는 만큼 소송을 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채권자 취소권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추가적인 법률 검토를 하고 있다. 소송을 하게 되면 금감원이 불법 행위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이를 바탕으로 피해자들이 소송을 하는 형식을 띨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금융당국이 영업정지 조치를 내리는 방식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태를 금감원이 확실하게 대처하지 못할 경우 하반기 추가로 영업이 정지될 저축은행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이어질 수 있다”며 “지금처럼 저축은행으로부터 영업정지 신청서를 받는 게 아니라 금융당국이 책임을 지고 전격적으로 영업정지 조치를 내려 정보 유출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 채권자 취소권 ::


채무자의 불법 행위로 다른 채권자의 권익이 침해됐다면 이 행위를 취소할 수 있는 민법상의 권리. 고객이 저축은행에 맡긴 예금은 저축은행에는 부채가 되기 때문에 채무자는 저축은행, 채권자는 예금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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