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MASSI/한국형 원조 노하우 찾아라]<2>컨트롤 타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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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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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권 없이 도장만 찍는 ‘원조 위원회’… 5년간 회의도 8번뿐

지난해 국회예산정책처는 국내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실태를 점검하고 ‘ODA 사업평가 보고서’를 냈다. 이에 따르면 2010년 현재 우리나라가 하고 있는 ODA 사업은 100여 개국에 1073개나 된다. 예산도 10억7405만 달러(약 1조2000억 원)에 이른다. 하지만 부처 간 겹치기, 난맥상, 사업 편중 현상을 보여 원조 효과가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무엇보다 ‘컨트롤타워’가 없기 때문이란 조언이 많다.

○ 시스템을 바꿔야

기획재정부(유상)와 외교통상부(무상), 각 부처, 지방자치단체별로 이뤄지는 원조체계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도 2008년 ‘한국의 원조 체계는 조율이 미흡해 같은 나라에 대해서도 원조 전략이 제각각’이라고 했다. 정부는 2006년 국무총리 산하에 국제개발협력위원회를 둔 데 이어 지난해 1월 ‘국제개발협력기본법’까지 만들어 총리가 위원장으로 모든 원조 정책을 심의 조정하도록 하는 법제를 마련했다.

하지만 위원회는 역할을 거의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회의가 열려 봐야 각 부처 사업의 현황을 파악하는 수준에 그치는 정도다. ‘중복사업이니 하지 말라’라든가 ‘예산이 편중 지원되고 있다’는 등의 조정 역할은 거의 하지 못하고 있는 것. ODA워치 이태주 대표는 “위원회에 국제원조 계획 서류가 올라가면 수정되지 않고 그대로 통과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회의도 2006년 3월 1차 이후 2010년 12월 8차를 마지막으로 5년간 여덟 번밖에 열리지 않았다. 위원들의 참석률도 저조해 지난해 6차 회의는 21명 중 8명이, 7차 회의에서는 25명 중 11명이 대리 참석하거나 불참했다. 손혁상 경희대 NGO대학원 교수도 “위원회 수준으로 예산권을 가진 기획재정부를 컨트롤하기에는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라고 지적했다.

강인수 숙명여대 교수는 “독립 부서로서 심의 기능뿐 아니라 예산 조정 및 집행 기능을 가진 ‘원조청’을 별도로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영국은 개발협력부처(DFID)가 별도로 있으며 일본은 유·무상 기관을 최근 외무성 산하로 통합했다. 캐나다 룩셈부르크 스웨덴 스위스 아일랜드 핀란드 노르웨이 등도 외교부가 주축이 되어 모든 원조 정책을 세우고 집행한다.

우리의 경우 당장 통합이나 별도 기구 설립이 어렵다면 ‘국제개발협력위원회’를 강화해 부처 간 전략적 협력이라도 잘해야 한다는 조언도 많다. 이화여대 김은미 국제대학원 국제학과 교수는 “무조건 통합기구를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부처 간 전문성을 살려 조율능력을 높이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한 나라에 병원을 지어 준다고 할 때 각 부처 전문가들이 모여 건축 단계에서부터 의료기기 선정, 의사 파견까지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각 부처에서 해외원조를 맡은 공무원 간의 정보 교환만 제대로 이뤄져도 원조의 질이 향상되고 예산 낭비도 크게 줄 것이라는 지적이다. 덧붙여 부처 간에 산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봉사단 파견이나 무상원조만이라도 전담기관인 KOICA로 집중시키는 방안도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 사전검토, 사후관리도 잘해야

한국 원조의 또 다른 문제점은 사후평가와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 외교안보연구원 강선주 경제통상연구부 교수는 “해당 국가에 학교 건물만 지어주면 끝이 아니라 원조 목적대로 원조국 시민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등 변화가 있었는지를 챙겨야 한다”며 “원조 사업이 시작되기 전과 마무리된 후의 차이점을 중심으로 원조를 평가하는 작업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KOICA의 사업보고서에도 드러난다. KOICA의 ‘2009년 베트남 국별 지원 전략 및 지원사업 평가서’에 따르면 당초 베트남 중부지역 5개 성에 40개의 초등학교 건설이 이뤄졌지만 교재와 교사가 부족해 학교 건설의 근본적인 목표인 ‘열악한 교육 환경’은 개선되지 않았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앞서 소개한 보고서에서 ‘ODA 사업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부처가 사전에 별도 ODA 예산을 배정받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집행 이후 실적으로 명세만 제출할 뿐이어서 국가 차원의 정책을 수립 및 조정할 수 없다’며 ‘각 부처 사업이 사전에 검토되는 게 아니라 사후적으로 실적만 보고되는 상황이라 집행 전부터 사업 타당성 검토는 물론이고 사후평가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지원국과 사업 내용이 편중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세계 최빈국 49개국 중 33개국(67.3%)이 아프리카 지역(특히 사하라 이남)에 있지만 우리나라 원조는 아시아 지역에 집중(2008년 54.2%)되면서 아프리카 지원 비중(18.5%)이 DAC 회원국들보다 낮은 수준이다.

또 ODA워치가 2009년 11월 라오스 원조사업 현장을 두 차례 방문하고 낸 보고서는 사업 내용의 편중을 지적하고 있다. 즉, ‘메콩강변 종합관리사업’ 등 현지에서 진행하는 6개 사업이 대부분 건축 등 하드웨어에 쏠렸다는 것. 교육 분야인 비엔티안중고등학교 건립 예산의 87%도 건축에 쓰였고 정보통신 분야인 전자정부 구축 지원도 40%가 건축비이며 농촌마을 종합개발도 도로 포장, 물탱크 설치 등 하드웨어에 투입됐다.

사후관리도 부실하다. ODA워치는 “유상원조로 지원된 라오스 루앙프라방국립대의 경우 건물만 지어 놓고 유지 보수나 운영, 소프트웨어 부문 등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는 등 사후관리가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요즘 부처에서 경쟁적으로 파견하고 있는 봉사단원은 물론이고 KOICA가 파견하는 해외봉사단원에 대한 관리도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있다. 국회예산처에 따르면 KOICA 봉사단원 교육 과정에서 중도 포기하는 인원뿐 아니라 현지 활동 중 임기 2년을 채우지 못하고 귀국하는 인원이 매년 100명에 달해 모집선발비, 항공운임비, 현지적응훈련비, 체재비 등의 예산이 새고 있다고 한다.

이에 비해 원조 선진국들은 원조 규모가 큰 것은 물론이고 사전·사후 관리에 철저한 편이다. 독일의 경우 철저한 사전 검토와 체계적인 모니터링으로 OECD DAC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또 미국이나 영국 등은 국제원조 시 ‘원조 효과성’을 가장 중시하고 있다고 한다. 즉, ‘학교 몇 개를 지어 줬느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학교 건립에 따라 해당 지역에서 저소득층 미취학 아동이 몇 명이나 취학했는지 △향후 5∼10년간 몇 명의 아동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며 이뤄질 수 있는지 △이에 따라 지역의 문맹률이나 교육 수준, 수원국의 삶의 질은 얼마나 향상되는지를 꼼꼼하게 따진다는 것이다.

외교안보연구원 강 교수는 “사전 현지조사, 해당 수원국의 각종 내부 문제, 지원할 지역의 각종 사회 통계 데이터 수집,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사업 추진 등 철저한 준비와 이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이뤄져야 원조 전략도 치밀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 품앗이(PUMASSI) ::

품을 서로 주고받으며 자립을 도와주는 한국 고유의 미풍양속이다.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된 한국의 ‘품앗이정신’을 세계적인 원조 브랜드로 키우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 “기여수준 낯뜨겁다” 潘총장 개탄 후 얼마나 달라졌나 ▼
지원액 2배 늘었지만 여전히 OECD 하위권


2007년 7월 방한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낯이 뜨겁다”라는 감정적인 표현까지 섞어가며 “한국이 경제적 위상에 걸맞지 않게 세계 공동체에 대한 기여 수준이 낮다”고 지적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지만 별로 나아진 게 없다.

한국의 국민순소득(GNI) 대비 공적개발원조(ODA) 비율은 2006년 0.05%(4억5500만 달러)에서 2009년 0.1%(8억1580만 달러)로 2배가량 늘었다.

2000년 2억1210만 달러(2362억 원)에 불과하던 원조 규모도 2009년에는 약 8억1580만 달러(9086억 원)를 기록해 절대 규모 면에서 큰 증가를 보였다. 하지만 2009년 GNI 대비 ODA 비율 0.1%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 회원국 평균인 0.31%와도 큰 차이가 난다. OECD 내 DAC 회원국 23개국으로 범위를 좁히면 2008년 기준 우리나라의 ODA 규모 순위는 19위이며 GNI 대비 ODA 비율 순위와 1인당 ODA 규모는 최하위인 23위로 꼴찌다.

이런 수치는 2008년 국내총생산(GDP) 규모로 세계 15위라는 한국의 경제력 순위와 비교해 보면 한참 부족하다. 같은 해 GDP 규모 경제력이 22위인 스웨덴의 경우 국민총생산 대비 ODA 비율이 1위이며, 24위 노르웨이는 3위, 28위인 덴마크는 4위다. 경제력 16위로 한국과 규모가 비슷한 네덜란드는 5위에 랭크됐다.

기여 내용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끄러운 대목이다. 대가 없이 주는 무상원조 비율의 경우(2008년) DAC 회원국 평균이 87.4%임에 반해 우리나라는 63.7% 수준이다. 원조 성격상 ‘비구속성 원조’ 비율의 경우도 DAC 회원국 평균이 87.3%인데 우리는 35.8%로 저조하다. ‘비구속성 원조’란 원조 집행 시 병원이나 학교를 지을 때 건설업체를 반드시 한국 회사로 해야 한다 같은 조건을 붙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OECD DAC는 현재 ‘비구속 무상원조’를 권고하고 있다.

한편 최근에는 지진 홍수 피해 등 해외재난이 늘고 있는데 이에 활용되는 긴급구호 예산도 지난해 810만 달러(약 95억 원)로 ODA 예산의 0.7%에 불과했다. 지난해에는 여름이 되기 전에 벌써 긴급구호 예산의 대부분이 바닥을 드러내 하반기에 다른 나라에 재난이 발생해도 지원할 돈이 없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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