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장사업 하다 보니…” 기업 라이벌 구도 재편

  • 동아일보

급변하는 경제 여건 속에 기업들이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수십 년간 동종 업계에서 경쟁하던 기업들이 다른 길을 걷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같은 분야에서 출발해 숙명의 라이벌로 불리던 기업들이 신성장 동력을 찾아 새로운 라이벌을 모색하기도 한다.

○ 라이벌 기업의 대명사

재계에서 라이벌 그룹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코오롱과 효성이다. 이들은 섬유를 모태산업으로 화학 분야까지 공통분모를 넓히며 50년 넘게 라이벌 관계를 이어왔다. 그러나 최근 신규 사업 분야가 달라지는 양상이다. 효성은 섬유와 산업자재 등을 핵심 사업으로 유지하는 동시에 중공업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전력 시장에서 선전한 데 이어 중국, 남미, 인도, 중동으로 중공업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도 키우는 중이다. 효성 관계자는 “우리의 새로운 라이벌은 대기업의 중공업 계열사”라고 말했다. 코오롱은 지난해 신수종 사업을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해 매출이 역대 최고인 2조 원을 돌파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물이다. 정수필터와 수처리약품 생산, 수처리장 건설과 운영 등 상하수도 산업을 원스톱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 코오롱 측은 “자회사들이 물 산업의 핵심인 소재와 시스템, 시공 부문의 라인업을 구축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그룹의 신성장 동력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 설탕에서 출발한 닮은 듯 다른 기업

수입품이던 설탕을 제일제당이 국내 최초로 생산해낸 것은 1953년. 2년 뒤 삼양사가 설탕 생산에 뛰어들면서 두 회사는 밀가루, 식용유 등으로 잇달아 경쟁을 벌였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두 회사의 지향점은 달라졌다. 삼성의 첫 제조업이었던 제일제당은 종합식품기업인 CJ제일제당으로 바뀌어 업계 1위를 자랑하고 있다. 다시다로 조미료 시장을 평정하고 냉동, 육가공, 즉석식품도 승승장구했다. 후발로 뛰어든 카레와 두부 시장에서는 오뚜기와 풀무원을 새 라이벌로 삼고 있다. 반면 삼양사는 신사업 비중을 높였다. 기존의 설탕, 밀가루 등은 ‘큐원’이라는 브랜드로 별도 관리하면서 사업 분야를 7개로 나눠 페트병, 수술용 실, 배합사료, 산업자재용 섬유, 이온교환수지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여전히 공통점도 있다. CJ제일제당은 빕스(VIPS), 삼양사는 세븐스프링스를 운영하면서 샐러드 뷔페형 레스토랑의 인기를 이끌고 있다. 히트 약품을 만든 것도 같다. 숙취해소제와 금연보조제의 상징인 ‘컨디션’과 ‘니코스탑’의 제조사는 제약사가 아니라 각각 CJ제일제당과 삼양사다.

○ 2차전지로 붙는다

대기업이 신성장 동력을 찾는 과정에서 계열사 간 경쟁사가 달라지기도 한다. SK와 LG가 그렇다. 정유업계 1위인 SK에너지의 경쟁사로는 늘 GS칼텍스(옛 LG칼텍스정유)가 꼽혀 왔다. 그런데 2차전지가 급부상하면서 SK에너지는 LG화학을 새로운 경쟁사이자 모범사례로 꼽고 있다.

LG화학은 10여 년간 계열사 통폐합을 통해 석유화학과 2차전지, 정보전자소재 분야에서 고수익 구조를 갖췄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는 미국 GM, 포드와 계약을 하는 등 월등히 앞서가는 상황. 지난해 10월 독일 다임러 그룹의 배터리 공급업체로 선정된 SK에너지는 전기차 배터리 기술 개발에 투자를 계속 늘리겠다고 밝혀 LG와 SK가 계열사 간 꼬리를 무는 라이벌 구도를 이어갈지 관심을 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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