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WINE]‘와인 선배님’ 오늘도 초보자 기 꺾어 행복하십니까

  • Array
  • 입력 2010년 3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주위를 둘러보면 와인에 도통 재미를 못 붙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들 가운데 절반쯤은 아예 와인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나머지 반은 ‘상처 입은 와인 반발파’ 정도로 부를 수 있겠다. 전자는 본인이 관심이 없다니 별문제가 아니지만 후자의 하소연을 듣다 보면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애초에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와인 선배’를 만났다는 것. 와인을 먼저 경험한 사람쯤으로 풀이하면 좋을 이 와인 선배라는 사람의 행태 역시 공통점이 많다. 과연 이들의 어떤 행동 때문에 와인에 대해 반감까지 갖게 만든 걸까.

대표적 유형이 바로 ‘말이 많다’는 거다. 와인 얘기를 몇 마디 꺼냈을 때 상대편이 추가로 질문을 하지 않으면 ‘그쯤에서 멈추라’는 신호인데 이들은 이를 알아채지 못한다. 아직 와인에 별 관심 없는 사람에게 장황한 와인 소개는 말하는 이의 잘난 체나 소음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물론 그 와인이 얼마나 좋은지 설명해 주고 함께 나누려는 속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말이다.

댄스곡으로 한껏 흥이 오른 노래방 분위기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하겠다고 발라드를 택해 순식간에 분위기를 잠재우는 사람들처럼 웃고 떠드는 자리에서 혼자서만 와인글라스에 코를 박고 심각하게 와인을 살피는 유형도 있다. 때와 장소를 구별 못한 이들의 행동 때문에 와인은 종종 격식을 차려야 하는 술, 거추장스럽고 부담스러운 술이라는 오해를 받는다.

‘와인은 어렵다’, ‘공부하지 않고는 마실 수 없다’ 같은 선입견은 이들 와인 선배의 도를 넘은 전문용어 남발이 초래한 측면이 있다. ‘까막까치밥나무의 향기’나 ‘고양이 오줌 냄새’처럼 일반인의 보편적 경험 범위를 벗어난 표현을 남발하는 이들의 이름을 아직까지 잊지 못하고 치를 떠는 ‘피해자’들이 필자 주변에도 적지 않다. 한국서 나고 자란 이들에게 좀체 경험하기 힘든 표현과 용어를 남발하면 듣는 이의 반감만 살 뿐이다. ‘샤토 디켐’에 숨은 인삼 향이나 ‘로마노 달 포르노 아마로네’의 고춧가루 향처럼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향을 찾는 것은 와인 애호가와 입문자 모두에게 흥미진진한 일이다.

이들 와인 선배들께는 일관된 태도 또한 부탁드리고 싶다 “와인은 부담 없이 즐기면 그만이지”라고 말한 지 30분도 안 돼 어려운 와인명을 줄줄 쏟아놓는 분들께 드리는 부탁이다. 와인을 맛보고 “와, 맛있다!”고 감탄하는 초보자 앞에 “아직 몇 년은 더 숙성시켜야 해”라고 찬물을 끼얹는 와인 선배들을 필자 역시 많이 봐 왔다.

“와인에 대해 알고 싶은데 어려울 것 같아서…”라며 주저하는 사람에게는 “나 역시 그런 시기가 있었다”며 공감해 주고 당시의 경험을 전해 주는 사람이 진정 반가운 와인 선배다. 요사이 와인 관련 초대 행사가 많다. 행사에 선보일 와인 가운데 한 병쯤은 이제 막 와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지인을 위한 와인으로 고르는 배려는 어떨까.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많이 맛보게 해 주는 게 와인 선배들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역시 ‘백문불여일음(百聞不如一飮)’이다.

김혜주 와인칼럼리스트

●이번 주의 와인- 샤토 드 포마르

부르고뉴 코트 드 본의 포마르 와인은 ‘검은(누아르)’이라는 형용사가 가장 잘 들어맞는다. 농밀하고 탄탄한 타닌감을 자랑하는 와인이다. 샤토 드 포마르는 18세기 프랑스 루이 왕조의 궁정용 와인 생산을 위해 조성한 와이너리다. 최근에는 앙리 제예의 제자인 필리프 샤를로팽이 양조를 맡으며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0년 넘게 장기 숙성이 가능한 와인으로 피노 누아르 100%로 만든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