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맥경화’ 걸린 일본

  • 동아닷컴
  • 입력 2010년 3월 12일 03시 00분


사실상 제로금리 정책에도
투자-소비 제동 ‘유동성 함정’
정작 시중에는 돈 돌지 않아

일본 정부가 정책금리를 0.1%로 낮춰 사실상 제로금리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정작 시중에는 돈이 돌지 않고 있다. 경기 전망이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아무리 금리를 낮춰 자금을 풀어도 설비투자나 소비로 연결되지 않는 유동성의 함정에 빠졌다. 일부 선진국에서는 금리 인상 등 출구전략이 논의되고 있지만 일본은 추가 금융완화정책까지 검토하고 있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지난해 말 정책금리(0.1%)를 동결하고 시중은행에 국채를 담보로 0.1%의 고정금리로 10조 엔(3개월 단기)을 공급하는 2차 금융완화정책을 발표했다. 덕분에 일본은 단기금리뿐 아니라 중장기 시중금리까지 덩달아 떨어졌고 달러당 80엔대 초반까지 치솟던 엔화가치도 안정되는 등 정책적 효과를 거뒀다.

그러나 일본은행이 정작 바랐던 결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시장금리가 떨어지고 대량의 자금공급이 일어나면 일반적으로 기업이나 개인의 자금조달 비용이 낮아져 경제활동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다. 특히 시중유동성이 늘어나면 화폐가치는 떨어지는 반면 물건의 가치는 오르기 때문에 일본은행은 디플레를 탈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일본 전국 시중은행의 대출 잔액(월평균)은 지난해 12월 4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선 이후 계속 감소하고 있다. 기업이나 개인이 손쉽게 돈을 빌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음에도 좀처럼 대출수요가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 내수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으면서 기업들이 설비투자 의욕을 잃었기 때문이다. 또 은행이 부실 채권을 우려해 여신심사기준을 강화하면서 정작 돈이 필요한 개인이나 기업에는 돈이 공급되지 않는 측면도 있다.

이에 따라 일본은행은 17일 열리는 정례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3차 금융완화정책을 본격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11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새로운 대책으로는 자금 공급 규모를 10조 엔에서 더 확대하거나, 자금 공급 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하는 등의 방안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본 경제계에서는 현 상황이 금융정책으로 실물경제를 조절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만큼 소비심리와 기업의 투자를 살리기 위해 근본적인 성장전략과 구체적인 규제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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