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덫 걸려… 재개발-재건축 ‘올스톱’ 속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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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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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설립 인가 무효소송 등
서울 사업장 40여곳서 분쟁
아파트 4만여채 공급 차질

서울 재개발·재건축 사업장 40여 곳에서 조합설립인가 무효 소송 등 분쟁이 발생해 아파트 4만여 채 공급이 지연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서울 재개발·재건축 사업장 40여 곳에서 조합설립인가 무효 소송 등 분쟁이 발생해 아파트 4만여 채 공급이 지연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지난달 24일 서울행정법원은 서울 왕십리뉴타운 1구역 조합원 4명이 성동구청과 재개발조합을 상대로 낸 조합설립 인가 무효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조합설립 인가 때 제출한 주민 동의서 644장 가운데 59장이 내용이 없는 ‘백지 동의서’로 조합설립 당시 인가 기준인 동의율 80%를 채우지 못한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이에 따라 3, 4월로 예정됐던 분양 일정은 대법원 확정 판결 때까지 미뤄졌으며 앞으로 상급 법원의 판결에 따라 조합설립을 새로 하거나 시공사를 다시 선정해야 할 수도 있어 사업 차질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조합설립 인가 무효 소송을 낸 조합원 4명은 조합 측에 10억여 원의 추가 보상비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택담보대출 규제 강화, 분양가 상한제 등으로 신규 아파트 분양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건설사들이 수도권 도심 재건축·재개발 사업에 속속 뛰어들고 있지만 전국의 재건축·재개발 사업장들이 ‘소송 대란’에 빠지면서 사업에 차질을 빚고 있다.

특히 최근 법원이 절차상의 문제로 재건축·재개발 사업 추진위원회 및 조합설립 인가 소송에서 잇달아 무효 판결을 내리면서 재건축·재개발 현장은 혼란에 빠진 상황이다.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강행하려는 조합 측과 이에 반대하는 비상대책위원회가 갈등을 겪는 곳도 늘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절차상 요건을 100% 제대로 갖춘 조합이나 추진위원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소송에 들어가면 상당수 사업장이 사업이 지연되거나 최악의 경우 취소될 수도 있다”며 “재건축·재개발에 투자할 때는 이를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일부 사업장 사업 자체 불투명

9일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와 서울시 등에 따르면 현재 서울에서 소송이 진행되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은 40여 곳이다. 주민 세입자 시공사 등 사업 주체들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각종 분쟁이 늘어난 데다 조합을 불신하는 주민들이 잇달아 소송을 내는 추세다.

송파구 가락시영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2000년 9월 20일 안전진단을 통과한 뒤 10년째 지지부진한 상태다. 지난해 10월 조합원 4명이 서울고등법원에 낸 사업시행계획 승인 결의 무효 확인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사업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이미 이주를 마친 조합원 1000가구와 건설사는 물론 소송을 낸 4명조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재개발을 추진하는 답십리16구역은 현재 착공 직전인 관리처분 단계에서 관리처분인가 무효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조합원 일부가 조합 측이 조합원들이 내야 할 개별분담금과 기존 재산 평가액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휘경3구역과 북아현2구역 등에서는 조합 설립 당시 낸 ‘백지 동의서’가 문제가 돼 조합과 비대위 측이 맞서고 있다. 녹번1·2구역에선 인감증명 복사본으로 된 주민 동의서가 발견되면서 조합원 일부가 조합 측을 대상으로 무효 소송을 냈다.

특히 용산4구역 재개발 현장에서 발생한 용산 화재 참사로 인해 재개발 사업을 둘러싼 갈등은 더 커질 것으로 건설업계는 보고 있다. 국가가 철거민에게 거액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되면서 비슷한 상황에 처한 세입자들도 이 같은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건설업계는 이처럼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이 ‘소송의 덫’에 걸리면서 4만여 채의 아파트 공급이 지연되고 있다고 추산한다.

○공공관리자 제도 확대 등 제도 개선 시급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이처럼 하루아침에 멈추는 것은 명확하지 않은 관련 법령과 재개발 사업의 주도권을 사실상 아무도 쥘 수 없는 구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두성규 건설경제연구실장은 “사업 당사자들이 자산가치를 최대한 높이려고 하다 보니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소송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사업 과정에 직접 개입해 조정하고 사업을 빨리 진행하도록 도와주는 공공관리자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절차상 문제나 당사자 간의 마찰 등을 객관적으로 조정하고 강제할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며 “당사자들이 직접 해결하려면 이해관계가 엇갈려 시간적, 금전적 피해가 크다”고 말했다. GS건설 관계자는 “재개발 사업에서 세입자나 상가조합원에 대한 보상비나 임대주택 건립의 부담을 전적으로 조합이 떠안으면서 갈등이 더 커졌다”며 “이런 갈등을 없애려면 정부의 사업비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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