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GS타산지석… ‘1인 2660만원’ 나랏빚 줄이기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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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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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확충 어떻게
企銀 지분 65%중 15% 팔고
불필요한 조세특례 등 폐지
5% 성장땐 국채발행 축소

문제는 ‘그림자 부채’
공식채무 308조 양호하지만
공기업-연금 보조할 돈 막대
사실상 채무 GDP 126% 넘어


유럽 일부 국가들의 재정위기가 세계 경제의 불안요인으로 떠오르자 정부가 숨겨진 국가부채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재정건전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대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정부가 공식 발표하는 국가채무는 주요국에 비해 많은 편이 아니지만 통계에 드러나지 않는 ‘그림자 부채’까지 합치면 국민 1인당 국가채무 부담액이 2600만 원을 넘어 나라 곳간 사정이 안심할 정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허경욱 기획재정부 1차관이 9일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이 한국의 재정건전성을 높이 평가할 정도로 한국의 재정은 문제가 없다”면서도 “다만 재정뿐 아니라 공공기관 부채 등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고 밝힌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보유 중인 기업은행 지분 65% 가운데 15%를 연내에 팔아 1조2000억 원가량의 재정 수입을 확보하기로 했다. 또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정부의 돈 씀씀이가 방만해진 경향이 있었다고 보고 지출 예산의 현장 점검을 강화하는 한편 정책 방향에 맞지 않는 세제혜택 등을 폐지해 재정 누수를 줄여나갈 방침이다.

○ 씀씀이 줄이고 자산 팔아 국가부채 축소


정부가 재정적자 축소에 나선 것은 국가부도 위기에 빠진 남부 유럽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국가들의 사례를 보면서 공공기관 부채 등 숨겨진 빚이 국가 재정을 위협하더라도 이를 견뎌낼 수 있는 체력을 사전에 비축해둬야 한다는 점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세수(稅收)에만 기대지 않고 팔 수 있는 자산을 최대한 내다 팔아 정부 수입을 늘리기로 했다.

우선 정부가 보유한 기업은행 지분을 분할 매각하기 위해 최근 삼성증권 등 주관증권사 실무진을 소집해 적정 매각시기와 매각조건 등을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는 경영권과 무관한 소수 지분(15%)만 팔 계획이다.

지출에서도 허리띠를 조여 불필요한 곳에 돈이 풀리는 것을 최대한 막기로 했다. 복지 예산 가운데 상당액이 부적격자에게 지원되거나 같은 사람에게 이중으로 나가는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고 지방자치단체별로 예산 지출 상황을 전면 재점검해 지출 규모를 조정해나갈 계획이다. 또 신약개발 업체에 계속 세제 혜택을 주되 경쟁력이 떨어져 리베이트 등으로 연명하는 제약업체들을 솎아내면 건강보험 재정 적자 규모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정책 방향과 동떨어진 세제 지원책도 점차 줄여나갈 계획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일자리 창출이 화두인 상황에서 공장 자동화설비에 투자하는 기업에 투자금의 3%를 세금에서 빼주는 지원책은 전체 정책기조와 맞지 않다고 판단해 조세특례제한법을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국가부채 증가의 직접적 요인인 국채(國債) 발행 규모를 대폭 줄이는 방안도 중장기 과제로 추진하기로 했다. 일단 올해 국고채 발행규모를 지난해보다 7조 원 적은 77조7000억 원으로 낮춘 뒤 올해 경제성장률이 5%를 넘어서면 이보다 더 많이 줄이기로 했다.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한국은 소규모 개방경제체제여서 재정건전성이 갑자기 나빠질 경우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보다 국가신용도에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엄격한 재정관리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사실상 국가채무’ 1300조 원 육박

통계에 잡히지 않는 한국의 국가부채는 국민들이 모르는 사이에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정부가 4대강 살리기 등 대형 국책사업을 벌이는 데 필요한 자금을 공식적인 재정수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공공기관 부채 등을 통해 조달해 왔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가재정법에 기초해 발표한 2008년 공식 국가채무는 308조3000억 원이며 2009년 추정치는 366조 원이다. 이는 정부가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발행하는 국채 원리금과 외환시장 및 주택안정 등을 위해 빌린 차입금을 합친 금액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008년 기준 30.1%로 유로지역 평균(73%)의 절반에도 못 미칠 정도로 건전한 편에 속한다.

하지만 여기에 △한국토지주택공사 수자원공사 등 공공기관 부채 △공공기관에 대해 국가가 보증한 채무 △국민연금 등 4대 공적연금의 손실에 대비해 쌓아둬야 하는 책임준비금 가운데 부족한 금액 등 국가가 최종적으로 책임져야 할 넓은 개념의 국가채무는 2008년 기준 1296조 원(GDP 대비 126.6%)이다. 이를 4860여만 명의 인구로 나누면 국민 한 명이 부담해야 할 금액은 2660만 원이 넘고, 1588만 가구(2005년 기준)로 나누면 가구당 무려 8161만 원이 된다.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공공기관 부채가 국가채무에 잡히지 않는다고 해도 공공기관이 갚지 못하면 결국은 정부와 국민이 책임져야 하는 만큼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재정부는 공식적으로 공공기관 부채, 국가보증채무 등은 국제통화기금(IMF)이 규정한 국가채무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최근 유럽발 위기를 계기로 숨겨진 부채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박형수 조세연구원 재정분석센터장은 “한국의 재정건전성이 비교적 건실한 이유 중 하나는 정부가 나랏돈으로 해야 할 일을 공공기관 등이 대신 수행했다는 점”이라며 “빠른 시일 내에 정부가 숨겨진 부채까지 감안한 재정관리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그림자 부채:


정부가 직접적으로 상환 의무를 지는 국가채무에 공공기관 부채, 국가보증채무, 공적연금의 손실예상액을 합한 것으로 ‘사실상의 국가채무’를 의미한다. 공식 용어는 아니지만 일부 재정학자가 통계상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 실체를 파악하기 힘든 빚이라는 뜻에서 이 용어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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