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KB금융 고강도 사전조사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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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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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선임 갈등’ 2R 터지나
일부 사외이사 비리혐의 확인
당국 “일상적 조사” 설명에도
금융권 “회장선임 무효화 압박”
강정원 주총 통과 여부 관심

금융감독원이 16∼23일 진행된 KB금융지주에 대한 사전 검사에서 일부 사외이사의 부적절한 권한행사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KB지주 회장 선출을 둘러싼 금융당국과 KB지주 간의 갈등이 2라운드로 접어들고 있다. 1라운드는 회장 선출권한을 가진 KB지주 측이 주도했지만 2라운드는 감독권한을 가진 금융당국이 주도하는 양상이다.

내년 1월 7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강정원 행장의 회장 선임, 1월 14일부터 예정된 4주일간의 금감원의 KB금융에 대한 종합검사와 금융위원회가 준비 중인 금융회사의 사외이사 제도 개편 등을 통해 양측의 갈등은 더욱 격해질 것으로 보인다.

○ 강정원 체제 안갯속…산 넘어 산

금융권에서는 우선 임시주총에서 큰 잡음 없이 강 행장이 지주회장으로 선임될지 주목하고 있다. KB지주 지분을 5.26% 가진 최대주주이며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창구로 거론되는 국민연금공단이 주요 변수다. 그동안 제한적인 주주권 행사만 해온 국민연금은 KB금융지주의 사외이사를 직접 추천하거나 임시주총에서 회장 선임에 대한 이의제기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외국인 지분이 반수가 넘은 상황에서 국민연금만의 힘으로 회장 선임을 뒤엎기에는 역부족이다.

강 행장이 임시주총을 통과하더라도 험난한 일정이 예고돼 있다. 그는 “회장에 취임하면 국민은행장은 분리해 자리를 내놓겠다”며 타협안을 제시했지만 당국의 공세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

금감원은 사외이사들이 막강한 권한을 활용해 경영진과 유착하며 부적절한 거래행위를 해왔다고 보고 있다. KB지주 이사회의 사외이사 관련 내규 개정도 이 중 하나. 이사회는 10월 사외이사 관련 내규를 개정하면서 연임과 재연임 추천 규정을 완화했다. 자신들의 연임이 쉽도록 은근슬쩍 규정을 뜯어 고친 것이다.

또 한 사외이사는 KB금융지주 회장 선임을 앞두고 회장 후보들에게 이번에 지지하는 조건으로 후임 국민은행장이 되게 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사외이사는 은행을 제외한 자회사의 인사권을 이사회에 넘겨 달라고 하는 등 사외이사들의 ‘도덕적 해이’가 상식선을 넘어섰다고 금융 당국은 보고 있다.

금융당국은 1월 종합 검사를 통해 사외이사들의 비리가 확인될 경우 계좌추적권을 발동하거나 검찰에 고발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사외이사들의 결정적인 문제가 드러나면 강 행장은 취임 후에도 ‘정통성’에 상처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 “KB지주 이사회 문제 있다” vs “관치금융 막겠다”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진행된 이번 사전 조사에 대해 금감원은 “일상적인 조사일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하지만 금융계에서는 금융 당국의 뜻을 거스르고 차기 회장 선임을 밀어붙인 KB금융에 대한 ‘손보기’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강 행장이 뚜렷한 성과도 없이 이사회와 유착해 너무 오랫동안 집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행장은 2004년 11월 3년 임기의 국민은행장으로 취임한 뒤 2007년 재신임돼 2010년 10월까지 임기를 남겨두고 있다. 내년 1월 회장으로 선임되면 다시 3년을 연장해 2013년 1월까지 9년 가까이 집권하는 셈이다. 금융당국은 또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 강 행장이 보인 경영능력에도 불만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강 행장과 수년씩 업무를 함께해온 KB지주 이사회에 회장선출을 맡겨두면 강 행장의 선임이 유력하다고 보고 최종후보에 오른 강 행장, 김병기 전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이철휘 자산관리공사 사장 등에게 “사외이사제도를 개편한 뒤에 회장을 선출하자”는 의중을 전달했다. 경제관료 출신 후보 2명은 이달 초 회장 후보 최종면접을 앞두고 “선임과정이 불공정하다”며 면접 불참 의사를 밝혔지만 강 행장은 사퇴를 거부했다.

한편 KB지주 이사회는 당국의 압박을 ‘관치금융’으로 받아들이고 회장 선임작업을 더욱 서둘러 사실상 단독후보였던 강 행장을 결국 회장으로 결정했다. 조담 이사회 의장은 “선임 절차를 바꾸자는 일부 이견에도 불구하고 황영기 전 회장 선출 때와 똑같은 형식으로 회장을 선출했다”며 “공정성 시비를 피하기 위한 유일한 해법이었다”고 주장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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