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월 말 현재 퇴직연금에 가입한 근로자는 총 가입대상자의 19.4%인 148만 명, 적립 금액은 9조1047억 원입니다. 2005년 12월에 도입한 후 4년 남짓한 짧은 기간을 감안하면 결코 적은 성과라 할 수 없겠지만 한국의 빠른 고령화 속도를 고려하면 당초 기대치에는 훨씬 못 미치는 것 같습니다.
기대만큼 도입 성과가 나타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근로자, 기업, 관련기관 모두 퇴직연금의 중요성을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지난해 실시한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퇴직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근로자의 95%가 퇴직연금제도를 모르고 있거나 약간 아는 수준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최근에 퇴직연금을 도입하지 않은 기업의 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77%가 도입 의향이 없거나 아직 미정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퇴직연금제도 도입에 촉진제 역할을 할 ‘근로자 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도 1년이 지나도록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생 100세 시대에 퇴직연금은 퇴직금의 연장선상이 아닌 가장 중요한 노후소득보장시스템의 하나입니다. 이러한 인식이 근로자, 기업경영자, 관련기관 모두에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이미 퇴직연금에 가입한 근로자들에게도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우선 기존에 적립한 퇴직금을 퇴직연금으로 전환시킨 근로자는 가입자의 33%밖에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중간 정산을 해서 받았거나 퇴직금 제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근로자들이 퇴직연금제도에 대해 너무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회사가 책임지고 적립자산을 운용하는 확정급여형(DB형) 연금과 근로자가 자기 책임 아래 적립자산을 운용하는 확정기여형(DC형) 연금 중 DB형 연금 가입자의 비율이 6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17%에 지나지 않았던 DC형의 비율이 최근엔 66%까지 늘어났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회사가 책임지고 운용해주는 DB형이 좋지 않으냐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과 같은 고령화 시대에 정해진 금액밖에 받을 수 없는 DB형 연금에 비해 DC형 연금은 운용에 따른 위험은 따르지만 잘 운용한다면 더 많은 노후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DC형에 가입하면 투자 교육을 받을 기회도 많아집니다. 퇴직연금제도를 먼저 도입한 선진국의 근로자 중에는 여기서 배운 투자지식을 다른 재테크에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원금보장에 집착하는 한국의 근로자들이 참고해야 할 사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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