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 시스터즈’ 였다면 금융위기 왔을까요?

  • 입력 2009년 6월 12일 03시 03분


은행권 ‘알파우먼’ 김선주-최명희-김명옥 부행장

“리먼 브러더스가 아니라 ‘리먼 시스터스’였다면 지금처럼 금융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여성은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기 때문이죠.”

단단한 유리천장을 깨고 ‘하늘의 별’을 딴 여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국내 은행권에서 보기 드문 여성 부행장 3명이 최근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이렇게 입을 모았다. SC제일은행의 김선주 소매영업운영본부 부행장(56), 외환은행의 최명희 글로벌 옴부즈맨(부행장·57), 한국씨티은행의 김명옥 업무지원본부 부행장(53)이 주인공. 일반 은행원으로 출발해 부행장에 오른 3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은행권의 ‘알파우먼’들이다.

여전히 높은 유리천장…CEO 마인드가 중요

이들은 입사할 때 ‘결혼하면 퇴사한다’는 각서를 써야 했고, 책임자로 승진할 땐 남자 직원이 항의하는 일도 벌어졌다. 그때에 비해 지금 여성의 근로조건은 크게 개선됐고 승진 기회도 늘었지만 유리천장은 아직 두껍다고 세 부행장은 꼬집었다.

“최근 책임자급 승진 대상자의 절반 이상이 여성일 정도로 여성 인력이 크게 늘었어요. 오히려 남녀 역차별 얘기가 나올 정도죠. 하지만 여성 부장, 지점장은 여전히 10% 정도에 불과합니다.” 1971년 농구선수로 제일은행에 입행해 일반 은행원으로 전직한 뒤 이 은행 최초의 여성 대리·부장·임원을 모두 꿰찬 김선주 부행장의 얘기다.

현재 국내 은행권 임원 200여 명 가운데 여성은 8명. 그나마 외국계 은행인 SC제일은행과 씨티은행, 외환은행, HSBC에만 여성 임원이 있을 뿐 국내 토종 은행에는 1명도 없다. 2002년 옛 서울은행에서 국내 최초 여성 부행장에 오른 김명옥 부행장은 “똑같은 업무가 주어져도 여성들은 1.5∼2배 일을 해야 인정받고 승진이 된다”며 “공정한 기회와 평가가 주어진다면 고위직 여성 인력이 훨씬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보다 더 보수적인 금융감독원에서 국제협력실장을 지낸 최명희 부행장은 “정부와 기업의 최고책임자가 여성 인력을 발굴하고 개발하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획력-전략적 사고 습관 길러야

세 부행장은 여성 스스로도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고 충고했다. 김명옥 부행장은 “똑똑한 여자 후배들이 스스로 한계와 편견을 만드는 걸 많이 본다”며 “눈높이를 낮추지 말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내부의 벽을 깨고 과감히 덤빌 줄 알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선주 부행장은 “여성이 창구 영업, 출납 업무를 주로 하다 보니 남성에 비해 기획력, 문제 해결력이 떨어진다”며 “스스로 이런 부족한 점을 채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명옥 부행장도 “항상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기르고, 큰 그림을 그려라”라고 당부했다.

남성에 비해 인적 네트워킹이 떨어지는 것도 이들이 꼽는 여성의 취약점. 세 부행장은 술자리 대신 다른 모임을 더 열심히 찾아다니며 인맥을 넓혔고(최명희), 대리 때부터 배운 뛰어난 골프 실력으로 남자 고객과 인연을 맺었으며(김선주), 사내 여성위원회 회장을 맡으며(김명옥)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들은 또 여성 후배들에게 회사와 가정에서 모두 완벽해야 한다는 ‘슈퍼우먼 콤플렉스’에서 당장 벗어나라고 강조했다. “회사 일도 잘하고 아이도 잘 키우고 재테크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젊은 세대에서 더 심해요. 이러면 쉽게 지치거나 포기하게 됩니다.”

금융이야말로 여성에게 맞는 직업

부행장까지 오른 원동력에 대해 이들은 여성 특유의 솔직함과 신중함을 바탕으로 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공통적으로 꼽았다.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솔직하게 내 얘기를 전달하고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상대가 잘못했을 때도 한 발짝 물러나 생각하며 이야기를 경청했다. 쌍방향 대화, 경청을 통해 여성 특유의 부드러운 리더십을 갖게 됐다.”(최명희 부행장)

“결재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현장을 뛰며 고객들과 직접 의사소통했다. 기업 대출을 할 때도 회사를 찾아가 직원들과 대화하면 재무제표를 보는 것보다 그 기업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김선주 부행장)

“팀워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팀원들과 생각을 공유하며, 모든 일을 역지사지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김명옥 부행장)

세 부행장은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는 여성의 강점은 리스크 관리가 중요한 은행의 특성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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