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판 대량매물… ELS 흔드는 검은손 있나

  • 입력 2009년 5월 17일 21시 48분


지난해 국내에서 20조 원 어치가 팔린 주가연계증권(ELS)에 대해 관계당국이 대규모로 수익률 조작 의혹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ELS는 주식이나 지수, 상품 등 기초자산의 움직임에 대한 투자자들의 예상이 빗나가지만 않으면 높은 수익률을 보장받을 수 있어 개인투자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파생상품이다. 그러나 이 상품을 직접 설계한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수익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고의로 수익률 조작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대거 발행된 ELS 모두 조사

사건의 발단이 된 것은 한화증권이 모두 400여 명에게 68억 원 어치를 판매한 ELS 상품. 포스코와 SK의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한 이 상품은 만기일에 두 종목의 주가가 모두 계약 당시 주가의 75% 이상이면 원금과 22%의 수익금을 지급하지만, 한 종목이라도 그 이하로 내려가면 그 주식의 하락률만큼 투자자들이 손실을 보는 구조다. 만기일인 지난 달 22일, 포스코의 주가는 최초 기준가의 80% 수준을 유지해 문제가 안 됐지만 SK의 주가가 75%보다 약간 높은 수준에서 미세하게 움직이자 투자자들은 이 주가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날 장 막판에 대량 매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SK 주가는 결국 75% 밑(11만9000원)으로 떨어진 채 장을 마감했다. 특히 이 매물의 절반 이상을 외국계 증권사가 주문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시장 일각에서는 상품의 발행 및 헤지를 담당한 캐나다의 A은행이 매도주문을 내 고의로 주가를 떨어뜨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한국거래소도 이날 SK의 주가하락으로 A은행이 약 30억 원의 손실을 피할 수 있었던 점을 중시하고 주가조작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감독당국은 최근에 발행된 ELS 전체로 조사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한국거래소 시장감시본부 관계자는 "지난해 2분기 증시 상승장에서 대거 발행돼 최근 조기상환 또는 만기를 맞은 700여 개 ELS 상품을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며 "이 상품들의 주가흐름을 관찰한 뒤, 불공정거래 혐의가 있다고 판단되면 금감원에 추가로 조사 의뢰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조사국 관계자는 "이번 SK 주식 거래가 돈을 아끼기 위한 불공정거래인지, 통상적인 금융공학기법에 따른 일반적 거래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이번 일로 ELS 시장이 신뢰를 잃을까 걱정된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발행 80%는 외국계, 관리감독은 부실

ELS는 국내에 도입된 2003년 이후 5년 동안 꾸준히 시장 규모를 늘려오다 지난해 처음으로 성장세가 꺾였다. 증시 침체로 많은 ELS의 기초자산 가격이 원금손실 구간까지 추락하면서 투자자들이 등을 돌렸기 때문. 작년 금융위기 이전에 발행된 ELS의 90% 가량은 원금 비보장 상품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증시가 다시 살아나면서 발행규모도 지난달까지 5개월 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도입 초기에는 증권사들이 "ELS의 손실 가능성은 대한민국이 망할 확률과 비슷하다"며 과잉 판촉을 하는 등 문제가 많았지만 지금은 투자자들의 의식이 높아져 원금손실 자체가 분쟁이 되는 일은 별로 없다. 대신 수익률 조작 가능성이란 더 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증권업계에선 ELS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가장 큰 원인으로 전체 상품 운용의 대부분을 금융당국의 감독을 사실상 받지 않는 외국 금융회사들이 전담하고 있는 점을 든다. 지난해 발행된 ELS의 80%는 외국계 금융사들이 했고 국내 증권사가 이들이 만든 상품을 판매하면서 수수료만 챙겼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ELS는 취급 허가를 받은 금융회사는 발행신고서만 내면 상품을 바로 출시할 수 있기 때문에 금융당국이 이를 일일이 감독할 여력도 없다. 또 개별종목, 특히 거래량이 적은 종목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는 작은 규모의 거래로도 주가를 크게 뒤흔들 수 있어 상대적으로 수익률 조작 유혹에 빠지기 쉽다.

금감원 관계자는 "ELS에 대한 적절한 감독방안을 고민 중"이라며 "만기일 종가 대신 만기일 직전 3~5일 간의 평균치로 수익률을 산출하거나, 기초자산을 개별종목 주가가 아닌 인덱스로 제한하는 방법 등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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