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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4월 15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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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금리 내리고 주택대출 늘려
“여론눈총 받더라도 돈벌이”
“구조조정이 중요하긴 하지만 결국 남는 건 실적이다. 이젠 수익성을 높이는 데 좀 더 신경을 쓰겠다.” 최근 기자와 만난 한 시중은행장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 할 수는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작년 4분기(10∼12월) 대규모 적자를 내는 바람에 텅 비다시피 한 은행 곳간을 더는 방치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금융시장이 안정되는 조짐을 보이면서 은행들이 예금 금리를 내리거나 주택담보대출을 늘리는 등 안정성 위주에서 수익성 위주 경영으로 전환하고 있다. 정부나 여론의 눈총을 일정 부분 감수하고서라도 ‘돈벌이’를 해야 할 때라고 판단한 측면도 있다.
○ 예대금리 차 3년 6개월 만에 2%대
2월 시중은행의 대출금리에서 예금금리를 뺀 예대금리 차는 신규 취급액 기준으로 2.34%포인트로 1월보다 0.59%포인트 늘었다. 은행들이 예금금리를 기준금리 하락 폭만큼 내린 반면 대출금리는 조금만 낮춘 결과다. 예대금리 차가 2%포인트를 넘어선 것은 2005년 8월 이후 처음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일각에선 “은행들이 ‘싸게 빌려 비싸게 빌려 준다’는 원칙에 입각해 수익을 창출하려는 기조로 접어들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대출금리를 내리라는 정부와 정치권의 압력이 잇따르지만 은행들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은 건전성뿐 아니라 수익성도 높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인식이 은행권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런 수익성 중시 정책 덕분에 대부분의 은행은 작년 4분기 적자에서 올 1분기(1∼3월) 흑자로 돌아선 것으로 추정된다.
○ 수익 적은 기업용 마이너스통장 축소
최근 은행들은 △수익이 덜 나는 기업금융 상품 축소 △수익이 많이 나는 개인 대출 비중확대 △현행 예대금리 차를 가능한 한 유지하는 방법으로 수익성을 높이고 있다. 한 대형 은행은 일정 한도를 정해놓고 필요할 때 빌려 쓰도록 한 일종의 기업용 마이너스통장인 한도성 여신 규모를 축소하기로 했다. 일반 기업대출에 비해 금리가 낮고 운용기간이 짧아 은행으로선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보고 이 부분의 여신한도를 다른 쪽으로 돌려 운용하기로 한 것이다.
개인 부문에선 주택담보대출을 대폭 늘려 수익성을 보전하고 있다. 2월 말 기준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244조7980억 원으로 1월에 비해 3조3163억 원 늘었다. 신규 주택담보대출로 고수익을 내긴 어렵지만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은행들이 최근 운용 규모를 늘리는 추세다.
요즘 시중은행의 최대 숙원사업은 대출금리의 기준 지표를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에서 은행의 실제 평균조달금리로 바꾸는 문제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2.0%로 낮추면서 CD금리는 2.4%대로 떨어졌지만 은행이 돈을 구하는 실제 조달금리는 4.21%(2월 말 기준)로 훨씬 높아 대출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 기업 구조조정 폭이 변수
그렇다고 모든 은행이 경영의 방향을 ‘위기 극복’에서 ‘수익성 제고’로 급선회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데다 국내 기업 부실을 정리하지 못한 상황이어서 은행 내부적으로 자산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등 조용히 수익기반을 다지고 있다. 하나은행 최임걸 리테일영업 담당 부행장은 “구조조정이 끝나지 않았고 연체율도 잡혔다고 보기 힘들어 본격적으로 수익성을 추구하기는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현재 진행 중인 대기업 재무평가와 업종별 신용위험평가 결과 드러날 부실 규모가 미래 수익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부실이 커지면 대손충당금도 늘어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신한은행 박주원 리스크관리그룹 부행장은 “살아날 수 있는 기업을 선제적으로 가려내 꾸준히 지원하는 것도 결국은 충당금을 줄여 은행의 수익성을 높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