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 대표업종 수술案 11년만에 재등장… “부실 선제 대응”

  • 입력 2009년 4월 14일 03시 01분


《정부가 국가 기간산업에 대해 업종별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한 것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이후 처음이다. 그 사이 개별 업종의 발전 방안이나 구조조정 방안은 있었지만 10개 대표 업종을 종합적으로 다룬 구조조정 방향은 11년 만인 셈. 글로벌 금융 충격이 실물경제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선제적 구조조정안을 마련해 최대한 기업의 연쇄 부실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작년 금융위기 시작때 상장사 40% 위험신호

경쟁력 강화에 초점, 무작정 지원은 안해

퇴출과정 진통 불가피

지식경제부는 ‘주요 업종별 구조조정 방향’ 보고서를 작성할 당시 부실 징후를 보이는 기업을 628개로 파악했다. 1576개 상장기업 중 39.8%에 해당했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56.0%)과 1998년(57.7%)보다는 낮지만 200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였다. 하지만 외환위기 때보다 민간부문이 훨씬 커지고 복잡해진 점을 감안해 시장의 자율을 존중하되 부실 징후가 있는 기업은 사전에 선별해 구조조정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구조조정과 함께 글로벌 핵심역량을 강화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 자동차…“글로벌 4강 진입 목표”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국내 자동차 5개사 중 글로벌 5대 기업에 들어가는 1개사를 포함한 3개사 정도를 집중 육성한다는 구조조정의 방향을 제시했다. 이는 ‘글로벌 5대 기업’인 현대·기아자동차를 제외하고 GM대우차, 르노삼성차, 쌍용차 등 나머지 3개 회사 중 최대 2개사 정도는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자동차산업이 침체에 빠진 지난해 말 이후 정부의 국내 자동차산업에 대한 대응을 보면 이 문건에 나온 내용과 상당부분 일치한다. 올해 초 법정관리를 신청한 쌍용차와 유동성 위기에 처한 GM대우차의 상황이 급박하지만 정부는 자금 지원 요청을 모두 거절했다. 정부는 쌍용차 협력업체는 일부 지원을 하면서도 정작 쌍용차에 대한 지원은 하지 않았고, ‘5월 위기설’이 돌고 있는 GM대우차의 ‘SOS’에 대해서도 단호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 세계 자동차산업이 무한경쟁에 뛰어들면서 규모의 경쟁력이 주요 화두가 됐기 때문에 국내 완성차 기업은 3, 4개로 재편되는 게 맞다”며 “부실한 한두 개 자동차 회사를 기존 회사가 인수하면 동반 부실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시장 퇴출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단지별 특성화 추진하는 석유화학

석유화학업종은 울산과 충남 대산, 전남 여수 등 3개 산업단지별로 특화한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단, 방식은 기업 간에 자율적으로 사업을 교환하고 품목을 통합하는 형식이다. 지경부는 대표적인 공급과잉 품목인 폴리스티렌(PS)과 테레프탈산(TPA)의 구조조정을 우선 추진하기로 했다. PS와 TPA는 각각 가전제품 케이스와 섬유류 등에 쓰이는 플라스틱 제품으로 수요 감소 및 중국 화학업체의 성장으로 고전하고 있다.

PS는 울산단지에 있는 3개 기업(금호석유화학, 동부하이텍, 바스프)과 여수단지에 있는 2개 기업(LG화학, 제일모직)을 단지별로 1개 기업으로 통합할 계획이다. TPA는 울산단지에 있는 4개 기업(삼성석유화학, 효성, KP케미칼, 태광산업)과 대산단지에 있는 삼성석유화학 공장 간 자율협의를 통해 총 1, 2개 기업으로 줄인다는 목표다. 이 밖에 나프타 분해시설(NCC)은 3개 산업단지에 흩어진 공장을 1, 2개 기업으로 통폐합하기로 했다.

하지만 석유화학업계는 이에 반발할 가능성이 많아 진통이 예상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PS의 경우 이미 전 세계적인 수요가 줄어 동부하이텍과 바스프의 매각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하지만 나머지 품목은 최근 석유화학 제품이 활황을 보이기 때문에 각 기업이 자발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설 리 없다”고 말했다.

김민 지경부 재료산업과장은 “최근 석유화학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지만 중동과 중국에서 정제시설을 본격 가동하면 다시 위기가 온다”며 “장기적으로 볼 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단지별 특성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나머지 산업의 구조조정 방향

조선산업은 정부가 올해 초 주요 채권단과 진행한 1, 2차 구조조정에서 드러났듯 부실 중소 조선사 퇴출에 집중돼 있다. 대형 조선업체들은 이미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어 수출금융 지원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지경부는 △한계 상황의 신생업체 신속 퇴출과 진입 억제 △중소형 조선사의 선종 전문화 △대형회사의 고부가가치 분야 개발지원 등을 중점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강(粗鋼) 생산량 기준으로 세계 6위인 철강산업은 생산능력을 강화해 안정적으로 소재를 공급하는 것으로 구조조정 방향을 정했다. 또 냉연강판 등 일부 공급과잉 품목은 설비를 적절히 줄이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시멘트산업은 생산원가를 소비자가격에 반영하고 노후 설비를 폐쇄해 설비능력을 적정하게 줄인다는 방침이다. 기계는 부문별 선도기업 약 40개사를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하고 중소기업은 자율적 구조조정을 유도하기로 했다. 섬유는 중국 섬유기업의 급성장에 따라 국내 화학섬유 및 방적기업에 대한 인수합병(M&A), 사업전환 등을 유도하기로 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휴대전화는 세계 1위 수준의 경쟁력을 계속 유지하는 데 초점을 뒀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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