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하락 ‘두 얼굴’

  • 입력 2009년 3월 30일 03시 05분


원유수입액 45% 급락 무역흑자규모 커져

산유국 자체정제 늘어 유화제품 수출 위기

낮은 수준에서 안정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국제 유가가 국내 산업에 축복과 위기를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

1일부터 27일까지 중동산 두바이유 평균 현물 가격은 배럴당 45.38달러(약 6만1218원). 유가가 폭등했던 지난해 평균(94.29달러)에 비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2007년 평균(68.43달러)보다도 싸다.

유가 하락은 수입액 감소로 이어져 무역수지 흑자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주요 산유국들이 석유 수출에 따른 수익이 줄어들자 자체 정유 및 석유화학 설비 증설에 나서게 한 것은 위기가 되고 있다. 경쟁자들을 대거 등장시켜 한국산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제품 수출을 어렵게 하고 있기 때문.

○ 무역 흑자에 기여

지난달 한국은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29억2900만 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냈다. 이는 2007년 6월(35억 달러) 이후 1년 8개월 만에 가장 큰 흑자 규모였다.

수출이 늘어서가 아니다. 유가와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수입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30.9% 급감했기 때문이다. 원유는 수입액 중 단일품목으로 가장 큰 비율(15∼20%)을 차지한다. 2월 원유 수입이 지난해 동기보다 45% 정도 줄어들면서 전체 수입액을 끌어내렸다. 원유 수입이 줄었다고 해서 물량 자체가 준 것은 아니다. 지난달 원유 수입량은 7477만 배럴로 지난해 2월(6789만 배럴)보다 늘었다. 하지만 국제 유가 하락으로 지난해 절반 가격으로 원유를 사 올 수 있었기 때문에 수입액이 45% 줄었다.

3월 들어서는 더 큰 원유 수입액 감소가 예상된다. 29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이달 원유 수입량은 7000만 배럴을 밑돌면서 수입액이 30억 달러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월 단위 원유 수입액이 30억 달러에 못 미친 것은 2005년 2월(27억7000만 달러) 이후 처음이다. 지식경제부는 원유를 중심으로 원자재 수입이 크게 줄면서 3월 무역수지는 40억 달러 이상 흑자가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석유제품 수출에 먹구름

하지만 유가 하락으로 인한 수입 감소를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한국의 주요 수출품인 석유제품(휘발유, 경유 등)과 석유화학제품의 수출 전망이 어둡기 때문이다.

석유공사에 따르면 원유를 수출하고 석유제품을 수입하던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국가들이 최근 정제설비를 신증설하는 작업을 가속화하고 있다. 유가가 낮기 때문에 부가가치가 높은 석유제품을 직접 만들겠다는 의도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는 2013년까지 하루 80만 배럴, 아랍에미리트는 2012년까지 하루 8만5000배럴이 넘는 규모의 정제설비 신증설 작업을 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도 원유 정제설비를 신증설할 뿐 아니라 지금까지 석유제품을 전량 수입하던 베트남 등 아시아 신흥경제국도 정제설비 신설에 뛰어드는 추세다.

지경부 당국자는 “국내 정유회사와 석유화학업체들은 지난해 고유가와 올해 다수의 경쟁사 출현이라는 시련을 맞고 있다”며 “고도화 시설을 도입하고 구조조정도 실시해 경쟁력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