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클리닉 통해 253만원이던 한달 적자 7000원으로 줄여

  • 입력 2009년 2월 23일 02시 54분


복지부, 민간재무설계社에 의뢰 무료상담

지출 축소 - 저금리 대출 갈아타기 등 안내

■ ‘빚의 늪’ 벗어나려면

주부 김모 씨(40)는 소액이라도 통장에 잔액이 있는 요즘 생활이 마치 꿈만 같다.

지난해 말 김 씨는 이자가 연 100% 이상인 일수(日收) 대출을 생각할 정도로 빚에 시달렸다. 재작년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남편이 추락 사고를 당한 뒤 치료비가 없어 여기저기서 돈을 빌린 것이 화근이었다. 대출이자를 갚기 위해 급전을 빌리는 일이 반복되면서 빚은 2700여만 원으로 불어났다.



금융회사의 상환 독촉은 나날이 심해졌다. 환경미화원인 남편과 동네 미용실에서 보조미용사로 일하는 김 씨의 봉급으로는 매달 162만 원에 이르는 대출 원리금을 갚을 길이 안 보였다.

일수업자와 만날 약속까지 잡은 김 씨의 삶이 바뀐 것은 보건복지가족부가 민간 재무설계 회사인 포도재무설계에 의뢰해 운영하는 부채클리닉 덕택이었다. 우연히 TV에서 부채클리닉의 서비스 내용을 접한 김 씨는 곧바로 상담을 신청했다.

김 씨는 무료 부채상담을 통해 그동안 숨통을 조여 온 고금리 부담을 줄이는 해법을 찾았다.

우선 남편과 시어머니 공동 명의의 빌라를 담보로 은행에서 1000만 원을 대출 받아 캐피털사에서 빌린 빚을 일부 갚았다. 캐피털사 대출금리가 연 19∼27%인 반면 은행의 부동산담보대출은 6%대. 저금리 대출이 가능하면 이를 통해 고금리 부채부터 갚는 것이 빚 해결의 기본 원칙이지만 김 씨는 이를 몰랐다.

김 씨 본인은 신용회복위원회에 개인 워크아웃(채무재조정)을 신청했다. 개인 워크아웃 대상자로 선정되면 이자가 감면되고 원금을 최장 8년에 걸쳐 분할 상환하게 된다. 이에 따라 김 씨 가족이 매달 대출금을 갚는 데 드는 비용은 162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줄었다. 매달 적자도 253만5000원에서 7000원으로 크게 감소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한국의 가구당 부채는 4054만 원에 이른다. 여유 자금이 없는 저소득층일수록 빚이 빚을 부르는 악순환의 늪에 빠지기 쉽다. 가장이 실직하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 당장의 생활비와 이자를 마련하기 위해 빚을 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저금리 대출로 갈아타기, 정부의 제도적 지원 등 빚 부담을 줄이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금융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던 저소득층은 이를 몰라 어려움을 키우는 사례가 많다. 부채클리닉은 금융소외계층에 전문가 상담 기회를 제공해 빚을 갚고 재기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해준다.

잘못된 투자와 소비로 젊은 나이에 많은 빚을 지게 된 박모 씨(30)는 부채클리닉을 통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전환대출보증제도를 알게 됐다. 이 제도는 연리 30% 이상의 대출을 받아 연체 없이 정상적으로 상환하는 등 일정 자격을 채운 채무자가 낮은 금리의 대출을 받도록 도와준다.

지난해 1월 사업을 시작하려고 직장을 그만둔 박 씨는 그동안 모은 돈을 주식투자로 모두 날렸다. 사업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생활비가 없어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새 직장을 구한 그는 할부금융으로 1800만 원짜리 차를 구입했다. ‘직장이 생겼으니 금방 갚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경기가 나쁜 탓에 5개월 만에 해고됐다.

박 씨가 전환대출보증제도 심사를 통과하면 매달 부채 상환에 드는 돈이 180만 원에서 100만 원으로 줄어든다.

포도재무설계 정승호 상담위원은 “부채클리닉을 진행하다 보면 금융소외계층의 공통된 문제점이 드러난다”며 “다급한 마음에 고금리 업체에서 돈을 빌리거나 자포자기 심정으로 빚 갚기를 포기해 오히려 빚을 키우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부채클리닉 덕택에 고금리의 덫에서 빠져나왔더라도 안정적인 소득이 없으면 이들은 다시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마이크로크레디트를 통한 창업 기반 제공과 일자리 알선 같은 후속 프로그램이 절실한 이유다.

신용회복위원회 유재철 신용교육팀장은 “저소득층이 당장의 빚을 갚는 데 급급해 미래의 계획을 세우지 못하면 생활고에 시달려 또다시 대출받는 신세가 되는 만큼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月생활비는 가계소득의 90% 안넘게

부채는 금융자산의 10배 안넘게

대출상환액은 月소득의 25% 안넘게

■ 가계 적자 막으려면

2008년 6월 현재 한국 가계는 1년 반 동안 가처분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갚을 수 있는 수준의 부채(가처분소득의 1.53배)를 지고 있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2004년 말 475조 원에서 지난해 9월 말 676조 원으로 불어났다. 2005년 이후 부동산 시장이 호황을 보이자 집을 장만하거나 늘리기 위해 빚을 낸 가계가 급증한 영향이 크다.

이런 상태에서 실물경기 침체가 장기화돼 가장의 실직, 소득 감소 등이 이어지면 소득보다 부채가 많은 ‘적자 가정’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금융연구실장은 “현재의 가계부채 규모뿐 아니라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속도와 잠재적인 가계부채 규모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며 “가계부채 문제는 특히 소득이 적은 취약계층에게 더 큰 압박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각 가계는 소득이 줄고 자산가치가 하락하는 경기 침체기를 견뎌낼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우선 자산의 일정 부분은 쉽게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으로 관리하고, 최소 월평균 생활비의 6배 이상에 해당하는 금융자산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일자리를 잃어 생활비가 끊기거나 가족 구성원의 갑작스러운 사고로 병원비 등 큰돈이 들어갈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금융 전문가들은 월평균 생활비가 가계소득의 최대 90%, 부채는 금융자산의 10배, 대출 원리금 상환액은 한 달 소득의 25%를 넘지 않는 게 좋다고 충고한다.

건전성 관리에 나선 시중은행이 대출 조건을 강화하면 개인들은 고금리 업체에서 돈을 빌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막으려면 자신의 신용도를 철저히 관리하는 게 최선이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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