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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1월 1일 00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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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적인 유동성 부족 현상을 불러오면서 올해 실물경제 침체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09년 세계경제 성장률을 각각 2.2%와 ―0.4%로 전망했다. 특히 선진국의 경제성장률은 ―1∼0% 수준으로 떨어지고 신흥시장국의 성장률도 예년보다 2∼3%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국가가 적극적인 경기부양을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정부 보증을 강화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의 주택 및 금융시장에서 불안요소가 남아있기 때문에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 선진국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
선진국 경제권에선 올해 경제성장률이 제2차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미국은 주택시장 침체가 지속되고 고용여건이 악화되면서 소비가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규모가 아직도 정확히 드러나지 않은 데다 부실 금융회사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이어지고 있어 정부가 엄청난 규모의 재정부담을 떠안게 될 가능성이 크다.
주택시장에서 자산가치 하락이 두드러지고 기업의 구조조정 등으로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미국 경제의 침체는 적어도 올 하반기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IMF와 OECD는 올해 미국의 성장률을 각각 ―0.7%, ―0.9%로 예상했다.
일본은 엔화 강세에 따른 수출 감소와 고용 불안이 장기적인 경기침체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경제연구소들은 대외수출이 올해보다 3.2% 정도, 설비투자는 4% 정도 감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미 정부가 2조 엔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등 경기부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고용 불안 등으로 민간소비는 0.5% 수준으로 소폭 상승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IMF가 제시한 올해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0.2%다.
주요 경제예측기관들은 2009년 유럽연합(EU)의 경제성장률이 ―0.4∼0.2%에 그치고 유로화를 사용하는 15개국(유로존)은 이보다 더 낮은 성장률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EU 경제를 이끄는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주요 회원국의 성장률은 대부분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의 설비투자와 건설투자가 크게 위축되고 고용 불안도 더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IMF는 유로존의 성장률을 ―0.5%, 영국 ―1.3%, 프랑스 ―0.5%, 독일 ―0.8% 등으로 보고 있다.
○ 신흥시장국은 성장세 크게 둔화
선진국 금융회사들이 대출을 거둬들이고 투자를 줄이면서 신흥시장국에서는 유동성 불안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가고 세계경제 침체로 수출도 줄면서 성장률이 크게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2006년, 2007년 연속으로 11%대였지만 2009년에는 8%대 성장 유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수출증가율이 둔화되고 주식 및 부동산 자산가치가 하락하면서 소비와 투자가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기준금리 인하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확대 등으로 경기부양을 시도하고 있지만 수출 둔화와 내수 부진은 올해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IMF는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8.5%로 내다봤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지만수 중국팀장은 “중국 수출기업의 투자 심리 위축 등으로 올 상반기 성장률은 5∼6%대에 그칠 수 있다”며 “다만 중국이 대규모 SOC 사업을 추진하면 한국의 에틸렌이나 정제유 등 석유화학제품과 기계 수출은 어느 정도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경우 유가 하락과 투자 위축으로 올해 성장률이 3∼4%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러시아의 수출액에서 연료 및 에너지 자원의 비중이 70%에 이르는 만큼 수요 감소로 인한 유가 하락은 무역수지 감소의 주요 원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재무부는 10월 우랄산 석유 가격이 배럴당 70달러 선을 유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가 11월에 50달러로 전망치를 낮추기도 했다.
이 밖에 인도는 수입 증가로 경상수지 적자가 커지고 정국도 불안해 6%대의 성장률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브라질은 농산물 수출 감소 등으로 3%대, 멕시코는 주요 수출시장인 미국의 경기침체로 1% 이하의 성장이 예측된다.
○ 동남아 개발도상국은 물가상승 이어질 듯
베트남의 경제성장률은 5.5%, 태국은 4%, 인도네시아는 4.5%에 그치는 등 동남아시아 개발도상국의 성장률도 예년보다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물가가 오르면서 내수가 위축되고, 수출 둔화로 산업생산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은 금융위기를 맞아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다른 동남아 국가는 유동성 확대와 예금보장에 중점을 뒀다. 이는 인플레이션을 우려했기 때문인데 2009년에도 여전히 고물가가 동남아 국가 경제성장의 장애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남미 국가는 농축수산물의 수출 감소로 대부분 2%대의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IMF는 아프리카 지역의 성장률도 5.1%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 건설 및 설비(플랜트) 수주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동지역은 경제성장률이 4%에도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IMF는 5.3%의 성장률 전망을 내놓았지만 국제 유가 하락세가 계속될 경우 성장률은 더 큰 폭으로 떨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가계의 소비심리와 기업의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한국의 플랜트 수주액도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다만 유가 하락으로 중동에 대한 무역수지 적자는 크게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중동지역 국가들은 최근 5년간 지속된 고유가로 축적한 오일머니를 동원해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 확대에 나서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현욱 연구위원은 “최근 5∼6년간 급등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올해에는 대부분 선진국이 마이너스 성장에 그칠 수 있다”며 “수출이나 원유 생산으로 경제를 지탱하는 신흥시장국과 개발도상국도 교역량 감소와 유가 하락으로 저성장 추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 금융위기, 과거와 다른 점 ▼
대공황 땐 보호무역→회복 느려
현 위기 국제공조→U턴 빠를듯
글로벌 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경제 침체가 본격화하면서 이번 위기를 79년 전 대공황과 비교해 분석하려는 시도가 활발해지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장기 호황은 자산 버블을 가져왔다. 하지만 과열을 우려한 미 정부가 금리를 인상하면서 거품이 꺼졌고, 1929년 10월 29일 다우존스주가가 하루 만에 11.72% 폭락하면서 그 여파는 전 세계로 번졌다.
이번 위기도 9·11테러 후 미국의 저금리 정책으로 급등했던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며 발생했다는 점에서 원인은 유사하다. 미국 투자은행(IB)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를 기반으로 복합파생상품을 만들어 각국 금융회사에 팔았고 이 금융상품이 부실화하면서 세계 경제에 충격을 줬다.
그러나 대응에는 차이가 있다.
대공황 후 미국에서는 은행이 파산하면서 유동성 경색이 시작됐다. 미 정부는 재정지출 확대를 주저했고 그 대신 2만 개가 넘는 품목에 최고 50%의 관세를 부과해 국내 산업을 보호하려고 했다. 다른 나라들이 미국과 유사한 정책을 취하면서 세계 무역액은 3년 만에 60%나 감소했다.
반면에 지금은 대공황의 실패를 거울 삼아 적극적인 국제 공조가 이뤄지고 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은 보호무역 확산을 경계한다는 문구에 합의했고 각국은 케인스의 처방대로 재정을 확대해 수요를 늘리고 있다.
대공황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나서야 각종 경제지표가 예전 수준으로 회복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처방을 내릴 경우 이번에는 2010년부터 경제가 차츰 살아날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세계은행은 2009년 세계 경제가 0.9% 성장한 뒤 2010년에는 3.0%로 다소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09년 세계 경제성장률이 2.2%로 저점을 찍은 뒤 2010년에는 3.2%로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 원자재 가격은 떨어진다. 정부는 세계경제 침체가 본격화하는 내년에는 유가가 중동산 두바이유 기준으로 배럴당 60달러 선에서 안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알루미늄, 구리 등 다른 원자재 가격도 하향 안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성태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대공황 당시에는 각국이 금본위제를 지키기 위해 통화량을 줄이고 무역장벽을 높여 침체가 지속됐다”며 “1931년 금본위제를 철폐하고 재정지출을 늘린 일본이 상대적으로 대공황을 일찍 극복한 선례가 있는 만큼 과감한 재정확대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