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한파 ‘가슴’으로 녹인다

  • 입력 2008년 12월 17일 03시 06분


임직원 다독이고… 고객에 친근하게…

《지난해 한 해외 정보기술(IT) 기업이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에 연간 200만 달러(약 27억4000만 원)를 지원하는 메인 스폰서를 제안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1991년부터 후원해 온 삼성전자의 지원금은 매년 20만 달러가량이지만 볼쇼이가 돈보다 의리를 선택한 것. 삼성전자 러시아연구소장을 지낸 우종삼 상무는 “삼성은 1998년 러시아의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지불유예) 선언 이후에도 볼쇼이 후원을 중단하지 않아 현지에서 신뢰의 기업으로 통한다”며 “한창 어려울 때 만들어진 정서는 삼성 TV와 휴대전화가 러시아 시장 1위에 오르는 토대가 됐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심화하면서 이 같은 ‘감성(感性)’ 키워드가 산업계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대외적인 브랜드 전략에서부터 사내(社內) 경영까지 감성경영에 나서는 기업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소비자와의 감성적 소통을 강조하는 ‘글로벌 브랜드 캠페인 2.0’을 가동 중인 삼성전자는 내년 불황 극복을 위한 마케팅 전략 키워드로 ‘감성’과 ‘친근감’을 선택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패션과 예술 등 그 나라의 대표적 문화행사를 후원하거나 단체 후원계약을 하는 방법으로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SK텔레콤은 내년 마케팅 전략을 소비자 서비스(CS)나 소비자 가치(CV)보다는 소비자 체험(CE) 중심으로 짜고 있다. SK텔레콤 브랜드전략실장인 박혜란 상무는 “기존 마케팅은 ‘기업이 소비자들에게 무언가를 해 준다’는 것을 전제했지만 이제는 고객이 주체가 되는 쪽으로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LG전자 디지털디스플레이(DD)사업본부에서는 9월부터 시작한 ‘영상편지 프로그램’이 인기다. 10월에는 결혼 2년차인 연상연하 사내 커플 이야기가 동영상으로 만들어져 전 직원 e메일로 보내졌고, 점심시간에 양가 부모를 깜짝 초청한 이벤트는 화제가 됐다.

LG전자 최고경영자(CEO)인 남용 부회장이 취임 이후 매주 2, 3차례 하고 있는 임직원들과의 ‘열린 대화’도 200회를 넘어섰다. 남 부회장은 최근 ‘열린 대화’ 자리에서 “리더는 가만히 앉아서 업무의 결과만 챙겨서는 안 되고 업무 처리과정을 애정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며 “또 직원들은 경영자의 마인드로 일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정일재 LG텔레콤 사장은 15일 사내 게시판에 올린 ‘CEO 메시지’에서 “일할 맛 나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한 열린 조직이 돼야 한다”며 “일하는 사람이 행복해야 회사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금융과 건설업계에도 감성경영 바람이 불고 있다.

이종휘 우리은행장은 10월 말 서울 경기 인천을 시작으로 전국 지점장들에게 중소기업 지원을 설득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이를 ‘웜 하트(warm heart)’ 프로젝트로 부른다.

이 행장은 “우리은행은 10년 전 외환위기 당시 국민의 힘 덕분에 재기할 수 있었다”며 “일시적 유동성 부족으로 중소기업 고객이 도산하는 일이 없도록 웜 하트를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

SK건설은 5월부터 매달 본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열던 미니음악회를 11월부터는 전국 각 지역 현장으로 확대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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