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범 무역협회장이 본 한국 경제위기 극복 전략

  • 입력 2008년 10월 18일 02시 56분


이희범 한국무역협회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경기침체 속에서도 새로운 시장이 생겨나는 만큼 틈새시장을 적극 공략하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이희범 한국무역협회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경기침체 속에서도 새로운 시장이 생겨나는 만큼 틈새시장을 적극 공략하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정치 - 규제개혁법 신속히 처리

기업 - 투자 늘리는 역발상 필요

노사 - 국익 위해서 한마음돼야

《“외환위기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지금 경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정치권도 정당 간 시각이 다를 수 있지만 ‘국익(國益)은 하나’라는 자세로 글로벌 경제 불안에 대처해야 합니다.” 이희범 한국무역협회장은 최근 한국에도 상당한 타격을 미치고 있는 미국발(發) 글로벌 경제위기와 관련해 “현재 경제 살리기를 위한 규제개혁 법안 600개가 국회에 제출돼 있는 만큼 조속한 처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15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이뤄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각 경제주체가 내 몫만 챙기겠다고 하면 ‘한국 호(號)’라는 배가 풍랑을 이기지 못하고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하지만 국민과 정치권, 기업과 노조 등이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면 충분히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고 역설했다.인터뷰=김상철 산업부 차장》

내년 유가하락 예상… 무역수지 흑자 돌아설 것

한미FTA 조속 비준해 경제살리기 전기 마련을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도 번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 기업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선진국의 경기침체로 수출 둔화는 불가피해 보입니다. 그러나 발상을 바꾸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습니다. 경기침체 속에서도 새로운 시장이 생겨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기업이 이런 틈새시장을 적극 공략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또 이럴 때 투자를 늘리고 신수종(新樹種) 사업을 발굴하는 기회로 삼겠다는 역발상도 필요합니다.”

이 회장은 “선진국에 대한 수출 둔화와는 대조적으로 러시아와 중남미, 인도 등에 대한 수출은 큰 폭으로 늘고 있다”며 이런 신흥시장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최근 상황에 대해 국민의 불안도 큰 것 같습니다.

“우린 위기에 강한 저력을 갖고 있습니다. 조금만 힘을 모으면 경제가 호전될 것이므로 지나치게 불안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 노사는 2001년 임금 동결을 결정하고 이후 6년간도 임금인상률을 최소화하는 등 합심한 끝에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자동차회사로 우뚝 섰습니다. 우리 국민과 근로자도 내 몫만을 따지지 말고 공동체와 국가를 위한 일에 동참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외국인 투자 유치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부품소재산업에서 일본과의 무역 역조를 해소하기 위해 전용공단을 만들어 일본 기업을 유치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기업은 한국의 노사문제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법과 질서가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투자 유치를 위해서라도 이제 노사문제만큼은 선진화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위기를 극복하는 지름길입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정치권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미국에서도 구제금융법안 처리 과정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이 초기에는 이견을 보였지만 결국 국익을 위해 처리했습니다. 규제 완화는 경제 살리기를 위한 선결 과제인 만큼 우리 정치권도 관련 규제개혁 법안 처리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자유무역협정(FTA) 민간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 회장은 한미 FTA 비준이 늦어지고 있는 현실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한미 FTA는 우리 경제가 위기를 넘어 더 큰 성장을 할 수 있는 기회인데 경제 이외의 이슈로 발목이 잡힌 뒤 표류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한-유럽연합(EU) FTA가 타결되면 미국도 한국과의 FTA를 안 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인 만큼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비준한 뒤 미국 의회를 설득해야 합니다.”

이 회장은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경제관료 출신이다. 하지만 공직자 시절은 물론 무역협회장 취임 이후 기업인 못지않게 현장을 많이 찾아 기업 현실에 밝다는 평을 듣는다.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 피해를 본 수출 중소기업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업 현장을 다녀보면 KIKO가 뭔지 모르고 은행이 권유해서 가입했다는 중소기업이 많습니다. 일부에서 이야기하는 ‘자유계약의 원칙’은 원론적으로는 맞습니다. 하지만 금융회사와 중소기업의 계약과정에 ‘정보와 힘의 비대칭성’이 있었던 만큼 금융회사도 시장원리만 이야기하지 말고 기업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도 자유계약이지만 문제가 생기자 정부가 나서고 있잖습니까.”

―환율 안정을 위한 금융당국의 외환시장 개입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외환 보유액 액수와 유동비율, 기업과 금융회사의 건전성 등을 볼 때 외환위기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심리적 이유로 외환시장이 경색되고 있습니다. 이런 경색을 막는 것은 정부의 역할입니다. 지나친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쓸 때는 써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는 “수출업체와 수입업체별로 상황이 다르고 국제유가와 경쟁국 환율동향 등 여러 변수가 있지만 무역업계에서 볼 때 적정 환율은 달러당 1050∼1100원”이라고 말했다.

―무역수지 전망은 어떻습니까.

“국제유가가 내려가면서 4분기(10∼12월)에는 흑자를 낼 것으로 보이지만 연간으로는 외환위기 이후 11년 만에 적자를 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지금 시점에서 섣부르게 말하기 어렵지만 내년에는 다시 흑자로 반전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 수출 증가세와 올해 무역적자의 주요인이었던 국제유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 이희범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1949년 경북 안동 출생 △서울대 사대부고,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행정고시 12회 △산업자원부 자원정책실장 △산업자원부 차관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서울산업대 총장 △산업자원부 장관 △FTA 민간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현) △한-아랍 소사이어티 이사장(현)

정리=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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