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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11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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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보다 70.5원 급락… 10년6개월새 최대
현대車-포스코 등 각각 1억달러 시장에 매각
“정부가 기업 압박” vs “사재기 차단” 논란도
천정부지로 치솟던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10일 하루 동안 10년 6개월여 만에 가장 큰 폭(70.5원)으로 급락했다.
원-달러 환율은 장 초반 급등했지만 정부 당국의 압박 속에 대기업이 달러를 쏟아내며 약 6시간 만에 235원이 떨어지는 ‘롤러코스터 장세’를 연출했다.
환율 급등세의 급한 불길은 일단 잡혔지만 경상수지 적자 흐름과 세계 금융시장 신용경색이 바뀌는 신호가 확인돼야 안정 국면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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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장 6분 만에 환율 1460원까지 급등
10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70.50원 내린 1309원으로 장을 마쳤다. 이는 1998년 3월 23일(―82원) 이후 하루 기준으로 환율이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진 것.
이날 환율은 극심한 변덕을 부렸다. 미국 뉴욕증시의 급락과 역외 시장의 매도세의 영향으로 전날보다 15.50원 오른 1395.0원에 장을 시작하더니 6분 만에 1460원까지 치솟았다.
거래량이 1분기의 60% 정도인 55억 달러에 불과할 정도로 위축된 가운데 해외 투자펀드의 환차손 대비용 선물환 매도 잔액을 줄이려는 투신권의 달러 사자 주문이 장을 이끌었다. 국내 증시 급락도 환율 상승을 부채질했다.
오후 들어 상황이 급반전했다. 금융감독원이 환투기 세력 단속에 나선다는 소식까지 알려지자 환율은 오후 1시 40분경 방향을 아래쪽으로 틀고 추락하기 시작한 것.
이날 금감원은 “외국환 은행의 고객별 외환거래 내용을 일별 보고받겠다”고 밝혔다. 환율 급등으로 달러 사재기가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은행과 기업 사이의 달러 주문과 거래 내용을 매일 들여다보겠다는 것.
○ 포스코 10억 달러 해외채 발행키로
전날 삼성전자에 이어 이날에는 포스코와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이 ‘달러 품귀현상’의 해결사로 나섰다. 이날 현대차와 포스코는 각각 수출대금 중 1억 달러 정도를 서울 환시에 내다 팔아 원화로 바꿨다. 포스코는 이날 이사회를 열고 10억 달러 규모의 해외채권 발행을 의결하고 외화자금을 국내로 들여오기로 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최근 파업으로 차질을 빚었던 수출대금 입금이 늘어나면서 달러 매각 규모도 평소에 비해 늘었다”고 설명했다.
1000만∼2000만 달러의 물량만 나와도 1원씩 환율이 출렁거릴 정도로 시장이 얇아진 상황에서 정부 당국의 압박과 대기업 매물까지 쏟아져 나오자 달러를 움켜쥐고 있던 수출기업들이 달러를 던지기 시작했다. 꽉 막혔던 ‘달러 물꼬’가 트이면서 환율은 오후 2시 50분경 1225원까지 폭락했다.
5시간 45분 만에 최고점 대비 235원이 떨어진 것. 하루 변동폭으로는 외환위기로 외환시장이 극도로 혼란스러웠던 1997년 12월 30일(495원) 이후 가장 컸다. 이날 환율은 1309.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박상철 우리은행 과장은 “이렇게 정신이 없는 장은 앞으로 다시 보기 힘들 것”이라며 “장 막판에는 워낙 변동폭이 커 달러를 팔아달라는 고객 주문의 10분의 1만 소화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 일단 거품은 빠졌지만 안심은 일러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이틀째 환율 하락으로 최근 서울 환시를 짓누르던 과도한 불안감은 다소 진정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균형 환율을 1002원 내외로 제시하며 세계 금융시장의 달러 유동성 문제가 풀리면 환율이 급락할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환율이 안정을 되찾으려면 세계 금융시장의 달러 ‘돈맥 경화’가 풀리는 신호와 국내 경상수지 적자 흐름의 개선이 확인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짧게는 앞으로 1주일, 길게는 한 달 정도를 중요한 시기로 보는 이유다.
정부 당국이 기업을 압박한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논란도 일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달러사재기 심리’를 푸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반론도 많다. 정부의 압박을 받고 뒤늦게 달러 공급에 나선 기업들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전종우 SC제일은행 상무는 “달러 사재기에 대한 정부의 압박과 과도한 환율 상승에 따른 업체의 차익 실현 심리가 맞아떨어지면서 환율이 급락했다”며 “경상수지 적자 흐름 개선과 미국 구제금융안 실행에 따른 신용경색 해소 등 환율 안정을 점칠 수 있는 펀더멘털 측면의 뚜렷한 신호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전경련 “국내 20대 그룹 외환 자금사정 안정적”
“재무 펀더멘털 건전… 4분기 경상수지 흑자 반전 전망”▼
삼성, 현대·기아자동차, LG, SK 등 주요 그룹은 최근 세계적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국내 금융시장의 유동성 불안에도 불구하고 외환 자금 사정이 안정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0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주요 20대 그룹 중 16개 그룹의 자금 담당 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현 경제 상황과 기업의 자금 사정을 점검하는 긴급회의를 연 뒤 이같이 밝혔다.
임상혁 전경련 경제정책팀장은 “회의는 무슨 문제 있어서가 아니라 ‘정말 문제가 있는지’ 점검해 보자는 취지로 소집된 것”이라며 “달러가 부족해 지급 결제를 못하는 사례는 전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최근 금융시장의 불안은 구조적인 수급 불균형보다는 심리적 요인으로 시장이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전경련 측은 “실물경제 부문에서는 각 그룹의 재무적 펀더멘털이 건전한 상태”라며 “참석자들은 4분기(10∼12월)에는 유가와 원자재 가격의 하락이 본격적으로 반영됨에 따라 경상수지도 적자에서 흑자로 반전될 것으로 전망했다”고 전했다.
전경련 측은 또 “참석자들은 이런 때일수록 정부정책을 신뢰하고, 정부 국민 기업 등 각 경제주체가 합심 단합해 대응해 나간다면 시장이 안정될 것으로 기대했다”고 덧붙였다.
기업들도 세계 금융시장 불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자금 시장의 조속한 안정을 위해 수출을 늘리는 한편 새로운 수출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고 전경련 측이 밝혔다.
이날 회의에서는 “기업들이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별도의 공동 대응을 하는 것은 마땅한 방안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시장에 불필요한 오해를 줄 수 있다”며 “수출시장 확대 노력을 통한 외화 획득이란 기업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자”는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외평채 가산금리 연일 최고치 경신
2014년 만기물 3.17%
하루새 0.29%P 상승▼
한국 정부가 발행하는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가산금리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급격히 치솟고 있다.
10일 기획재정부와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국제 금융시장에서 외평채(2014년 만기)의 미 국채 대비 가산금리가 8일 기준 317bp(1bp=0.01%)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전날보다는 29bp, 작년 말보다는 219bp나 상승한 수치다. 2013년 만기 외평채와 2016년 만기 외평채의 가산금리도 각각 321bp, 303bp로 역대 가장 높은 수준에 올랐다. 이 역시 작년 말보다 191bp, 193bp씩 급등한 것이다.
이런 상승세는 중국 외화국채(2013년물)의 가산금리가 236bp로 전년 말 대비 117bp, 말레이시아 외화국채(2011년물)의 가산금리가 282bp로 전년 말 대비 167bp 오른 것보다 더 빠른 상승 속도다.
재정부 관계자는 “한국 경제가 해외 자본에 상대적으로 많이 노출돼 있고 경상수지 적자가 이어지는 등의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것 같다”며 “그러나 외평채 가산금리가 국가 신용등급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현재 외평채 발행도 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5년물 한국 국채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8일 기준 303bp로 작년 말에 비해 258bp, 9월 말에 비해 123bp나 뛰었다. 9월 말에 비해 CDS 프리미엄이 123bp를 넘긴 나라는 인도네시아(215bp), 베트남(123bp) 정도다.
CDS란 채권의 신용위험만을 분리해 시장에서 사고파는 금융파생상품으로 프리미엄이 높다는 것은 해당 국가나 기업의 위험신용도가 높다는 뜻이다.
김광현 기자 kkh@donga.com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가산금리::
외평채란 원화의 가치 안정과 투기 자금의 유·출입에 따른 악영향을 막기 위한 자금 조달용으로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 채권 발행 때 기준금리(미국 국채금리)에 더해 주는 금리가 가산금리다. 해당 국가의 신용위험도가 높을수록 가산금리가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