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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11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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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위주 실적평가에 ‘단명’
외국에선 대부분 10년 이상
“경력 단순비교 무리” 지적도
국내 자산운용사의 주식운용본부장 A 씨는 올해 들어 현업 펀드매니저들과 의견 충돌이 부쩍 잦았다.
금융권 경력만 20여 년인 A 씨는 올해 초부터 ‘증시가 심상치 않다’고 느껴 펀드 내 주식 비중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젊은 펀드매니저들은 “반등 기미가 있는 종목을 찾아 더 편입하자”고 주장했다. 결국 9월 이후 세계 증시는 손을 쓸 수 없는 수준으로 망가졌고, A 씨의 판단이 옳았음이 입증됐다.
그는 “과거 외환위기 등을 겪은 펀드매니저는 경험상 하락장에서 어떤 종목이 좋은지 알며 특히 단기 수익을 쫓기보다 주식 비중을 낮추는 식의 대책을 세운다”며 “국내에서는 2004년 상승장 이후 젊은 펀드매니저들이 대거 영입돼 지금과 같은 하락장을 겪은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시장에 공포감이 형성된 가운데, 국내 펀드매니저 가운데 증시의 굴곡을 골고루 경험한 베테랑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0일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9월 말 기준으로 자산운용협회에 ‘운용인력’으로 등록된 펀드매니저의 평균 운용경력은 25개월.
이에 비해 글로벌 자산운용사에 소속된 전체 펀드매니저의 평균 운용경력은 블랙록 14년, 슈로더 13.5년, 피델리티 17년이었다. 슈로더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펀드매니저는 뉴욕에서 근무하는 데이비드 볼트 씨로, 운용경력 37년에다 리서치 경력 7년까지 더해져 1980년대의 블랙먼데이, 저축대부조합 파산 등 산전수전을 다 겪고 아직도 활동 중이다.
국내 펀드매니저의 운용경력이 짧은 데 대해 일부에서는 국내 자산운용사의 ‘단기수익’ 위주의 실적 평가를 원인으로 지적한다. 짧은 기간 안에 수익을 높여야 한다는 부담을 견디지 못한 펀드매니저들이 스스로 업종을 떠나거나 해외 유학을 간다는 것.
미국계 자산운용사인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에 근무하는 김태홍 펀드매니저는 “프랭클린템플턴은 펀드매니저를 평가할 때 1년, 3년, 5년 수익률을 각각 30%씩 반영해 단기 수익률에 대한 압박이 작다”며 “그만큼 기업탐방, 세미나를 통해 종목을 연구할 시간이 많다”고 말했다.
국내 자산운용사에서 최근 외국계 자산운용사로 이직한 한 임원은 “국내 자산운용사는 1년 수익률 위주로 성과급을 정한다”며 “국내에서 펀드매니저 생활을 10년 넘게 지속하는 사람은 10명 중 많아야 1, 2명”이라고 말했다.
지금 각 회사에서 ‘허리’ 역할을 해야 할 연령대의 펀드매니저들이 1990년대 외환위기, 2000년대 정보기술(IT) 버블 붕괴를 거치며 시장을 이탈했고, 최근 호황기 때 젊은 펀드매니저들이 대거 충원된 것도 평균 운용경력이 짧은 한 원인이다. 운용경력이 10년 이상인 펀드매니저는 적고 운용경력 1, 2년인 펀드매니저가 다수라 평균이 짧아졌다는 뜻이다.
국내에서는 증권사 등 다른 금융회사에서 경력을 쌓은 뒤 펀드매니저가 되는 경우가 많아 운용경력만 갖고 펀드매니저의 실력을 평가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강신우 한국투신운용 부사장은 “국내에서 주식형펀드 시장이 커진 것은 2004년 이후로 수십 년 역사를 지닌 외국과 같은 기준으로 펀드매니저 경력을 비교할 수는 없다”면서도 “펀드시장에 커짐에 따라 국내에서도 경험이 풍부한 현명한 펀드매니저가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