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사면초가’… 금리는 ‘진퇴양난’

  • 입력 2008년 6월 13일 03시 00분


기준금리 10개월째 동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하기로 12일 결정했다. 이로써 기준금리는 지난해 8월 연 5%로 0.25%포인트 올라간 이후 9월부터 10개월째 동결됐다. 금통위는 국내외 경기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한편 물가 상승세도 큰 폭으로 확대됨에 따라 금리를 동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한은이 앞으로도 현 금리 수준을 당분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 금리,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한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또다시 동결한 것은 금리를 인하하기에는 최근의 물가 불안이 심각하고 그렇다고 금리를 인상하자니 경기 침체가 심각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4.9%나 올랐고 생산자물가나 수입물가 상승률은 이보다 더 높다. 게다가 최근 통화량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도 물가 상승 압력을 높이고 있다.

현 경기 상황에 대한 우려도 크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이날 금통위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수출은 크게 증가하고 있지만 고용사정이 악화되고 소비심리도 나빠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성장세가 둔화되는 모습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라는 두 악재(惡材) 사이에서 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 상황에 빠진 것이다.

그동안 시장에서는 새 정부가 출범 직후 물가보다 성장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한은이 금리 인하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기획재정부가 ‘물가 잡기’로 우선순위를 옮기면서 한은에 대한 ‘압박’이 줄어든 것도 금리 동결의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 “경기보다 물가가 위험”

다만 한은은 두 가지 위험을 굳이 비교하자면 경기하강보다는 물가불안이 더 심각하다는 점을 이번 금통위에서 분명히 했다.

한은은 이날 ‘최근 국내외 경제동향’ 자료에서 “지금 같은 고유가, 고환율 여건에서는 물가의 상방(上方) 위험이 성장의 하방 위험보다 더 크다”고 밝혔다.

이 총재도 “물가상승률은 앞으로 상당 기간 높아질 것이며 6월 이후는 5월 상승률보다 조금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물경제 요인에 의한 물가상승도 문제지만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 총재는 “최근에는 수입물가에 직접 영향을 받지 않는 품목에도 물가상승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며 “시장에서 이와 같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진정시킬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가격조정을 미뤄 왔던 품목의 가격이 전반적인 물가상승에 편승해 같이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다만 그는 “스태그플레이션은 낮은 성장률과 높은 물가상승률이 상당 기간 지속될 때를 의미하는데 지금은 아직 그런 상황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 “당분간 시장 관망하며 동결할 듯”

이에 따라 한은이 언젠가는 금리 인상 카드를 내놓을지 모른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유가 급등에 따라 세계적으로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위험이 커지고 있기 때문.

이 총재도 “금리는 언제든지 올릴 수도 내릴 수도 있다”며 향후 기준금리의 조정 가능성을 열어 뒀다.

그러나 금리를 올리면 경기가 지금보다 더 빠르게 하강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 또한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게다가 최근의 물가 상승이 국내 요인보다는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외부 요인의 영향이 커 금리 인상의 효과도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한은이 앞으로도 금리를 현 수준으로 계속 유지하면서 시장을 지켜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연세대 김정식(경제학과) 교수는 “경기가 조금 나아진다면 내년에 물가를 생각해 금리 인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금리 인상이 상당히 위험한 카드”라며 “그렇다고 금리를 내리는 것은 한은이 물가를 잡겠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꼴이라 이마저도 곤란하다”고 말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물가가 오르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생겨 임금 인상 요구가 커질 가능성이 크다”며 “경기와 물가 모두 우려한다면 금리는 당분간 동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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