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없으니 투자 않고 투자 안하니 창업 못해

  • 입력 2008년 4월 30일 03시 00분


IT강국 한국, 왜 ‘글로벌IT기업’ 안 생기나

《임찬규(27) 씨 등 세종대 학생 4명으로 구성된 ‘엔샵605’팀은 지난해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가 주최한 세계 소프트웨어 개발 경진대회인 ‘이매진컵’에서 2위를 차지했다. 이들이 개발한 ‘시청각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의사소통 기술’은 MS 관계자들로부터 “절대 사장(死藏)돼서는 안 될 최고의 기술”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하지만 이 기술이 빛을 보지 못하고 묻힐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임 씨는 “직접 제품으로 만들고 싶지만 어떻게 창업해야 할지, 어디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벤처 생태계’ 선순환 구조 붕괴

신생 IT 벤처기업 해마다 줄어

투자사도 안전한 중견업체 선호

MS, 애플, 구글, 야후, HP, 델, 선마이크로시스템스 등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은 한두 명의 아이디어로 시작한 벤처기업에서 출발해 세계 경제를 이끄는 주력 기업으로까지 성장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기대를 하기 어렵다.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하는 기업가적 활력의 부족과 벤처투자회사들의 소극적 자세로 아이디어가 자본을 만나 신상품 개발이나 창업으로 이어지는 ‘벤처 생태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정보통신산업협회에 따르면 2005년 한 해 새로 생긴 정보기술(IT) 벤처기업은 3941개였으나 2007년에는 신생 벤처기업이 3380개로 줄었다.

2000년대 초반 170여 개에 이르던 벤처투자사는 최근 100개 안팎으로 급감했다.

벤처투자회사인 소프트뱅크벤처스의 유승운 수석심사역은 “2000년대 초 ‘벤처 버블’ 붕괴 이후 국내에서는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도 창업하겠다는 젊은이들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만큼 창업 과정에서의 위험을 기피한다는 뜻이다.

벤처투자사들의 투자 행태도 문제다. 국내 벤처자금은 투자 위험이 큰 신생기업보다 투자 회수가 쉬운 중견기업이나 상장(上場) 직전 기업으로, IT 기업보다 철강업 등 고수익 제조업 쪽으로 쏠리고 있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벤처자금의 창업 3년 미만 기업에 대한 투자비중은 36.8%에 그쳤다. 나머지는 창업 3∼7년(38.0%)차인 중견기업이나 7년 이상의 안정적 기업(25.2%)에 투자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투자사 ‘알토스 벤처’의 한 킴 파트너는 “미국에서 벤처캐피털은 신생 벤처기업의 싹을 틔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며 “수천 개의 기업 공모전, 산학(産學) 협동 연구, 대학 강연회 등을 통해 젊은 기업인들을 발굴한다”고 말했다.

벤처캐피털들은 투자 결정 후에도 경영 상황을 꾸준히 지켜보고 사업전략까지 제시한다고 했다.

벤처기업은 성공 확률이 매우 낮지만 성공할 경우 경제 기여도는 매우 높다.

미국은 100개의 창업 아이디어 중 10개 정도만 투자 가치가 있고 실제 투자가 이뤄지는 것은 1%에 불과하다.

하지만 미국벤처캐피털협회에 따르면 2006년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7.6%가 벤처캐피털의 지원을 받는 기업에서 발생했고, 이 기업들이 창출한 일자리만 1억400만 개, 매출은 2조3000억 달러에 이른다.

국내 IT벤처 1세대인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은 “창업가 정신이야말로 경제를 이끄는 원동력”이라며 “풍부한 인재풀을 바탕으로 도전을 장려하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국판 애플’, ‘한국판 구글’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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