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성 교수의 소비일기]개인정보 공개 ‘강요’하는…

  • 입력 2008년 3월 12일 02시 59분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을 때면 가끔 영수증과 함께 주는 종이가 있습니다.

대부분 응모번호가 적혀 있는데, 그 정유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응모하라는 것이지요.

그동안 ‘당첨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 싶어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이번엔 프랑스 칸행 비행기 티켓을 준다고 하네요.

아, 조금 구미가 당깁니다. 》

‘밑져야 본전인데 홈페이지에서 클릭이라도 한번 해보자’ 싶어 가방에 챙겨 넣습니다. 평소처럼 무시하기에는 조금 아깝더라고요.

홈페이지에 접속하니 친절하게도 이벤트 행사창이 휙 뜹니다. 그런데 ‘응모하기’를 누르니 ‘로그인한 후 이용해 주십시오’라는 안내가 나옵니다. 로그인을 누르니 이번엔 회원이 아니라며 회원 가입을 하라고 합니다. 그만둬 버리려다 마치 다 당첨된 것을 갖다 버리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에 ‘그래, 한번 가보자’라고 마음먹고 또 누릅니다.

그랬더니 이번엔 실명확인을 해야 한다며 주민등록번호를 치랍니다. 그 다음엔 회원정보취급 지침과 서비스 이용 약관에 동의를 하랍니다.

어, 그런데 그 아래 이상한 조항이 있습니다. ‘○○주유소가 속한 그룹의 모든 계열사에 마케팅 활동 및 업무 수행을 위한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한다’라는 조항이 들어 있네요.

이렇게 내 개인정보가 나가는 건 싫지만, 지금까지 한 게 아까워서 계속 갑니다.

동의를 하겠다고 하고 나서야 회원 가입 신청서가 나옵니다. 그런데, 주민등록번호, 주소, 생일, 전화번호, 심지어 e메일 주소까지 다 적으라고 합니다. 한 칸이라도 비면 정보가 빠졌다며 자꾸 다시 작성하라는 말만 나온 채 더는 진행이 안 됩니다. 결국 필요한 사항을 다 넣고 나서야 ‘회원 가입을 축하드린다’는 말이 나옵니다.

새 ID로 로그인해서야 비로소 응모행사 버튼을 누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고 받은 답은 ‘안타깝군요. 다음 기회를 이용해 주십시오’입니다.

‘내 이럴 줄 알았는데, 또 이렇게 헛수고를 했다’ 싶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 정유사는 제 개인정보를 모두 갖게 되었습니다.

아니 그 정유사뿐 아니라 그 그룹의 계열사들까지 마음 놓고 제 정보를 쓸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당첨확률이 얼마나 될지도 모르는 응모권을 받고 개인정보를 판 것이 되더군요. 그제야 번뜩 ‘아, 또 얼마나 많은 스팸메일과 문자메시지가 올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어쨌든 저는 그 모든 행위에 법적으로 확실하게 동의 한 것이니까요.

여정성 서울대 생활과학대 소비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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