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동빈 기자의 카 라이프]안전장치 패키지 판매 유감

  • 입력 2008년 2월 19일 02시 59분


‘끼이익∼∼쾅.’

커브 길에서 옆을 빠르게 지나가던 ‘엘란트라’ 승용차가 눈앞에서 사고를 당한 것은 정말 순식간이었습니다.

1996년 가을 어느 날. ‘마르샤’를 몰고 중앙분리대가 있는 자동차 전용도로의 1차로를 시속 90km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다가오던 엘란트라 승용차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옆을 지나쳐 가더군요.

앞이 제법 심한 왼쪽 커브라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50m 정도 앞서 가던 엘란트라는 뒷부분이 스르륵 미끄러지는가 싶더니 도로 옆 가드레일을 들이받았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가드레일과 1차 충돌한 차는 튕겨 나오면서 기자의 차가 주행하고 있는 1차로 쪽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고 운전대를 오른쪽으로 돌렸습니다. 잠김방지브레이크(ABS)가 작동하며 페달을 통해 짧게 ‘다다닥’ 치는 느낌이 발바닥에 전해져 왔고, 차는 가까스로 2차로 쪽으로 자리를 바꿨습니다. 그러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고 차가 중앙분리대를 강하게 들이받고 다시 2차로로 넘어와서 가드레일과 또 충돌하며 20m 앞쪽에서 길을 막고 멈춰 서는 것입니다.

‘대형 사고다’라는 생각과 함께 브레이크를 밟은 채로 다시 운전대를 왼쪽으로 돌려 1차로로 피했습니다. 짧은 순간에 ‘차를 산 지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라는 생각까지 떠올랐습니다.

그대로 미끄러져 추돌할 것 같았던 마르샤는 신기하게 방향을 바꿨고, 엘란트라를 스치듯 아슬아슬하게 피해 나올 수 있었습니다. 2, 3초 만에 일어난 상황입니다.

사고를 면하게 해 준 1등 공신은 급브레이크를 밟고 차가 미끄러지는 상황에서도 조향이 가능하도록 해 준 ‘ABS’였습니다. 사고 이후 차를 구입할 때는 안전과 관련된 장치는 가능한 한 모두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국산차의 경우 안전장치들이 패키지로 묶여서 값비싼 다른 장치를 선택하지 않으면 마음대로 붙일 수 없다는 점입니다. ABS와 차체자세제어장치(VDC), 사이드커튼 에어백 등이 그렇습니다.

자동차회사로서도 어려운 대목이 있다는 점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안전 문제에 관한 한 타협하지 않는다’는 기업 철학을 보여 줄 수 있다면 소비자의 사랑을 듬뿍 받는 브랜드가 되지 않을까요.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