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보험판매 전쟁 ‘앗 뜨거’

  • 입력 2007년 12월 20일 02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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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은행의 서울 중구 영업점에 있는 김모(32) 대리는 지난달 신규 보험료로만 30만 원을 냈다. 보험 판매 목표액을 채우지 못해 본인 명의로 보험을 3건이나 들었다. 김 대리는 “할당량을 채우지 않으면 인사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내년 종신보험 등 방카쉬랑스 확대 앞서 기선잡기

직원들에 할당 강요… “상품 설명 부실 부작용 우려”

최근 각 시중은행이 지점별 보험가입 목표액을 정해 놓고 직원에게 판매를 강요하거나 소비자에게 대출을 해 주는 조건으로 보험 가입을 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은행에서 다양한 보험을 팔아 소비자의 선택 폭을 넓히려는 방카쉬랑스의 취지가 퇴색한 것이다.

은행의 이 같은 무리한 보험영업 행태는 내년 4월부터 종신보험 등이 방카쉬랑스에 포함돼 보험판매시장이 커지면서 각 은행이 ‘보험 소비자가 많이 찾는 곳’이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보험 판매에 열을 올리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은행의 이런 영업 행태는 결국 보험 소비자가 각 보험상품의 보장 내용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사게 돼 나중에 민원이 급증할 수 있다.

○ 목표액 채우려 직원 명의로 가입

최근 은행들은 연말까지 달성해야 할 보험판매 목표액을 각 지점에 전달했다. 대체로 지난해 판매액의 120∼150% 수준이다.

B은행의 한 영업점은 누적 기준으로 월 8000만 원의 보험료 수입을 올려야 한다는 목표치를 받고 당혹스러워했다. 지난달 5일 기준 월 수입보험료가 2000만 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어서 목표액을 달성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 영업점의 한 직원은 “지인들이 이미 다 보험에 가입한 상태”라며 “일단 내 돈으로 첫 회분 보험료를 낸 뒤 더는 보험료를 내지 않아 계약이 자동 해지되도록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출을 받으러 온 사람에게 보험에 들도록 하는 ‘꺾기’ 관행도 여전하다.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가 9월 한국갤럽에 의뢰해 보험 가입고객 20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2%가 ‘보험에 드는 조건으로 대출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 수수료 비싼 보험부터 판매

올해 4∼9월 은행의 보험 판매금액은 보험료 기준 4조8916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조4431억 원(41.8%)이 늘었다. 은행의 보험판매가 이처럼 급증한 것은 은행들이 수수료가 많은 고가의 보험을 우선 팔려고 하는 데 일부 원인이 있다.

한 시중은행이 지난달 초 각 지점에 배포한 ‘방카쉬랑스 수수료 지급률 현황’ 자료에는 수수료가 많은 상품을 팔면 평가 때 높은 점수를 주고, 수수료가 적은 상품을 팔면 낮은 점수를 주도록 돼 있었다. 예컨대 같은 변액연금보험이라도 매달 보험료를 내는 적립형으로 팔면 판매액의 80%만 실적으로 인정해 주고, 보험료를 한꺼번에 내는 일시납 형태로 팔면 판매액의 120%를 실적으로 인정해 주는 식이다. 창구 직원으로선 고객 사정과 상관없이 수수료가 많은 보험을 먼저 팔려고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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